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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암 말기 환자, 신약은 보험 안 되니 살릴 방법이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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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사망한 신장암 4기 환자 김성문(60·가명·남·제주도)씨. 그는 2009년부터 신장암 치료제를 복용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내성이 생겨 약효가 듣지 않았다. 유일한 희망은 기존 신장암 치료제(1차 치료제)에 내성을 보인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2차 치료제(제품명 ‘아피니토’)를 복용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치료제의 한 달치 약값이 417만원에 달해 복용은 언감생심이었다. 다행히 올 초 건강보험 적용이 될 가능성이 커 희망을 가졌다. 보험 혜택을 받으면 약값의 5%만 부담하면 된다. 그러나 치료제를 공급하는 제약사와 정부의 보험약가 협상이 결렬되면서 희망도, 생명도 함께 날아갔다. 서울대 암병원 종양내과 이세훈(40) 교수와 한국신장암환우회 김태호(44) 사무국장이 지난 11일 서울대병원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신장암 환자의 절박한 현실과 대안을 얘기했다. 김 사무국장의 부인은 신장암이 폐로 전이된 4기암 환자다.

지난 11일 한국신장암환우회 김태호 사무국장(왼쪽)이 서울대 암병원 이세훈 교수와 신장암 환자의 치료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신승철]

-이세훈: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한 해에 4000여 명(2008년 기준)의 신장암 환자가 발생했다. 점차 그 수가 늘고 있다. 이 중 약 500명은 진행성 신장암(4기)으로 발견된다. 신장암은 2·3기가 거의 없다. 초기 아니면 4기다. 병의 진행 속도가 빠르고, 생존율이 높지 않은 악성 암으로 분류된다.

 -김태호: 과거 신장암 환자는 50~60대 남성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신장암 환우 회원을 보면 20~30대 젊은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이: 그렇다. 하지만 신장암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주요 위험인자로 꼽히는 게 흡연이다. 비만한 여성과 석면·카드뮴 같은 중금속에 많이 노출된 사람도 신장암 발병위험이 높다. 장기간 혈액투석을 받은 환자와 염색체 이상도 원인 중 하나다. 신장암은 초기일 때 수술하면 80~90% 완치된다. 하지만 전이성 신장암(4기)은 완치가 어렵다. 2005년까지만 해도 인터페론과 인터루킨-2를 이용한 면역 치료에 기댔다. 이후 신장암에만 효과를 보이는 표적항암제가 나오며 환자 생존율이 높아졌다. 그러나 치료제에 내성을 보여 약효가 없는 환자도 나타났다.

 -김: 다행히 2009년 신장암 환자에게 희소식이 있었다. 기존 신장암 치료제에 내성을 보인 환자에게 쓸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아피니토)가 소개됐다.

 -이: 아피니토는 임상시험 결과, 위약군과 비교해 무진행 생존기간(암이 더 이상 악화하지 않는 기간)을 2.5배 늘렸다.

 -김: 문제는 한 달 약값이 417만원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 치료제는 이미 미국 등 10여개국에서 보험 적용을 받고 있다.

 -이: 진료 현장에서도 애로점이 많다. 치료제가 있는데 환자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 자괴감이 든다.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보인 환자는 3개월 내에 사망한다.

 -김: 암처럼 위중한 치료제의 보험 적용 문제를 다룰 땐 정부·제약사 모두 신중해야 한다. 내 가족 중에 암환자가 있다고 생각했으면 한다. ‘약가 협상 결렬’이라고 발표하면 끝인가. 환자는 죽음을 선고받는 셈이다.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환자도 많다. 암환자가 가장이거나 60세가 넘으면 치료를 포기한다. 신약은 암처럼 중증질환자에게 ‘생명의 동아줄’이다. 그러나 보험 적용이 안 되면 ‘그림의 떡’이다.

 -이: 보험 적용 결렬은 신장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국의 국립임상보건연구원(NICE)의 지혜가 부럽다. 혈액종양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벨케이드’는 한 달 약값이 1000만원이 넘어 영국 정부도 보험 적용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NICE가 중재안을 내놨다. 일단 투여해 본 뒤 치료제에 효과를 보이는 사람은 보험을 적용했다. 효과가 없는 사람의 치료비는 제약사가 부담한 것이다. 정부와 제약사도 환자를 위해 이 중재안을 수용했다.

 -김: 새 신장암 치료제가 보험급여될 때까지 살 수 있을지 묻는 환자가 많다. 차라리 치료제가 없었다면 기대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와 제약사는 경제적인 능력이 안 돼 죽어가는 환자를 바라보는 가족의 심정을 생각하길 바란다. 

-이: 신장암도 예방이 중요하다. 주요 위험인자인 흡연과 과다한 동물지방 섭취를 피해야 한다. 초기에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에 건강검진을 통한 주기적인 복부 초음파 검사가 필요하다.

정리=황운하 기자
사진=프리랜서 신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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