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학 뭉쳐 ‘명기’ 칼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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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세계 최고 칼잡이 회사가 되겠다.” 최도현(55·사진) 대원인물 대표의 말이다. 회사 이름 대원인물의 ‘인물’은 ‘인물’(人物)이 아니라 ‘인물’(刃物)이다. 물건을 깎고 자르는 연장을 뜻한다. 이 회사는 철강용 나이프를 만든다. 최근 강도가 기존보다 10배 이상 뛰어난 나이프 소재를 개발해 양산을 앞두고 있다. 포스코특수강, 중소기업청, 국민대 신소재공학부 권훈(57) 교수 연구팀과 힘을 합친 결과다. 최 대표는 “민·관·학이 동반성장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똘똘 뭉쳤다”며 “관련 분야에서만큼은 최고로 인정받는 중소기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철강용 나이프는 소재가 핵심이다. 단단한 철판을 자르다 보니 얼마 가지 못해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에 대원인물에서 개발한 신소재 나이프는 교체 기간을 크게 늘렸다. 최 대표는 “포스코 후판 공장에선 평균 3.5일마다 나이프를 교체한다. 하지만 신소재 나이프는 6일 동안 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나이프를 개발할 수 있었던 계기는 2008년 정준양 포스코 회장(당시 사장)과의 간담회였다. 협력사 대표로 간담회에 참석한 최 대표는 “포스코가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작업할 때 쓰는 자재도 최고 수준이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우리가 제대로 된 제품을 개발할 테니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정 회장은 그 자리에서 “그 말이 맞다”며 “말로만 그러겠다고 하면 바뀔 수도 있으니 협약을 맺어 서로 돕는 방향으로 해 보자”고 화답했다.

 이후 대원인물의 고강도 나이프는 포스코가 운영하는 상생 협력 프로그램인 ‘월드 베스트 월드 퍼스트(World Best World First)’ 품목으로 선정됐다. 이 프로그램은 기술 경쟁력을 가진 중소기업 제품을 키우기 위한 제도다. 포스코는 대원인물에 박사급 인력 3명을 보내 기술 개발을 도왔다. 계약한 납품 대금도 100% 현금으로 결제해 자금 부담을 덜어줬다. 최 대표는 “한번에 수십t 단위로만 제품을 생산하던 포스코 공장 라인에서 수kg의 나이프 견본품도 생산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며 “대기업에서 협력업체가 신소재를 만든다고 해서 도와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얘기다. 포스코 덕분에 한결 수월하게 개발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

 권훈 교수 연구실은 실질적인 연구개발(R&D) 센터였다. 포스코 공장에서 견본품을 생산했다면, 이전까지 실험은 모두 권 교수의 연구실에서 이뤄졌기 때문. 중소기업청도 힘을 보탰다. 이 프로젝트를 기술혁신과제로 선정해 5억원을 연구 자금으로 지원한 것이다.

 최근 철판은 얇으면서도 강한 소재로 바뀌는 추세다. 그만큼 자르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최 대표는 “고강도 나이프에 대한 철강업체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개발을 완료하면 세계 각국에 나이프를 수출해 올해 110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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