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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탁의 연어, 노르웨이→칠레→노르웨이산이 거슬러 오르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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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3월 사흘간 열린 미국 보스턴 국제수산물박람회에 간 이마트 한태연 수산물팀장과 백혜성 바이어가 수산물을 살펴보고 있다. 미국 수산물협회는 국내 시장 공략을 위해 지난해부터 이들의 비행기 값을 지원하고 있다.


이마트가 다음달 서울 문정동 가든 파이브점에 생선스테이크용 생선 전용 매장을 만든다. 이곳에서는 다른 해외 수산물과 함께 이마트 수산물팀이 지난 3월 미국에서 발굴한 칠레연어 수입 업체의 연어가 판매된다. 이마트 한태연 수산물팀장은 생선 전용 매장을 위해 지난 3월 팀원 2명과 미국 보스턴 국제수산물박람회에 다녀왔다.

왕복 비행기 값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미국수산물협회가 지원했다. 2007년 한·미 FTA가 체결되면서 생긴 변화다. 한 팀장은 “미국 축산업계가 한국 시장에 대한 마케팅을 늘리자 미 수산업계에서도 자극을 받은 것 같다”며 “미국뿐 아니라 남미와 북미 대륙의 주요 농수산물이 미국으로 집결되는 만큼 미국과의 FTA가 발효되면 국내 시장에도 큰 변화가 생길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 팀장은 “아직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이지만 미리 시장을 선점한다는 차원에서 전용 매장을 여는 것”이라며 “FTA가 가정의 식탁에 생선스테이크를 올려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FTA가 한국의 식탁을 바꾸고 있다. 대형마트가 FTA 체결 국가로의 산지 개발에 본격 나서면서 과거엔 보기 힘들었던 농수산물이 국내 시장에 속속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100만 마리가 팔려 대박 상품이 된 베트남 블랙타이거 새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의 FTA가 발효된 후인 2009년 베트남에 해외 소싱 사무소를 개설해 상품 개발에 나선 결과다. 몸 길이가 대하보다 큰 20㎝지만 한 마리 1300원대로 보통 새우보다 20% 싼 편이었다. 관세를 12% 줄였기에 가능한 가격이었다.

 연어는 FTA에 따라 시장의 대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004년까지만 해도 국내 수입되는 연어의 대부분은 노르웨이산과 미국 알래스카산이었다. 하지만 그해 한·칠레 FTA가 발효되면서 칠레산 연어가 급격히 늘었고, 대신 알래스카산 연어는 국내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물량 성장세도 주춤했다. 그러다 2005년 EFTA(노르웨이·스위스·리히텐슈타인·아이슬란드)와의 FTA가 체결되면서 노르웨이산 연어의 비중이 다시 압도적 1위로 올라섰다.

20%까지 하던 관세가 품종에 따라 아예 없어지거나 2.5%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아예 노르웨이에 두 군데 지정 양식장을 만들고 비행기를 이용해 직송해 오고 있다. 이마트 측은 “관세가 낮아졌기 때문에 연어를 비행기로 들여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칠레산 포도 역시 FTA로 국내 식탁에서 주요 과일로 자리 잡은 경우다. 2003년 이후 매년 36%씩 수입 물량이 늘어났다. 칠레산 와인도 2003년에만 해도 국내 와인 시장에서 7.2%를 차지하는 데 불과했지만 매년 62%씩 수입량이 늘어 2008년엔 국내 시장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게 됐다. 대형마트 업계에선 지난 4일 국회에서 비준된 한·EU FTA 역시 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이 본사인 홈플러스는 한·EU FTA가 체결되면서 유럽의 다양한 와인을 대거 들여올 예정이다. 현재 7개인 와인 브랜드가 다음달까지 28개로 크게 늘어난다. 이마트도 올리브유 등 가공식품과 스페인 오렌지 같은 대체 과일 거래를 개발 중이다.

 대형마트 업체들은 2009년부터 시작된 호주·뉴질랜드와의 FTA 협상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이들 나라가 남반구에 있어서다. 이마트는 지난 3월부터 호주에 ‘바나나 새우’ 지정 양식장을 만들었다. 뉴질랜드의 키위회사 제스프리와도 직거래 계약을 맺었다. 이마트 측은 “호주와 뉴질랜드는 한국과 계절이 반대라 겨울에도 신선한 과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산지”라며 “FTA 기대 국가로 꼽힌다”고 말했다.

 ◆공산품 수입도 늘어나=주로 중국에서 들여오던 손톱깎이·면봉 같은 작은 생활용품과 청바지 등 의류도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바뀌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올봄 중국으로부터의 의류 등 패션 상품의 수입량이 전년 대비 31% 줄어든 반면 아세안 국가 상품 수입은 12% 늘었다. 기존엔 중국산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수입량이 적었지만 한·아세안 FTA로 관세가 낮아진 데다 중국의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대체 생산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대형마트 업체들은 해외 거래 전담팀을 만들어 대응에 나서고 있다. 2008년 20명으로 출발한 이마트의 해외소싱팀은 현재 인원이 50명까지 늘어났다. 이 팀은 FTA에 따른 시장 변화를 즉각 반영한다. 2003년 업계 최초로 해외소싱팀을 만들었던 홈플러스는 2008년부터 광양항 물류센터를 해외소싱 전담 물류센터로 사용하고 있다. 홈플러스 최희준 해외상품팀장은 “FTA 특수에다 이상기후 등으로 국내 신선식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해외서 물건을 들여오는 트렌드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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