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외국인이 반한 한국 (26) 프랑스 새색시가 말하는 로맨틱 코리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남원 광한루에서 한복 차려입고 남편과 함께 찰칵.

프랑스 갈 때면 “김치 못 먹겠네” 고민

나는 프랑스에서 온 스물여덟 살 ‘에바’다. 한국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려고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을 때 나는 스물네 살이었다. 고향에서 9000㎞나 떨어진 한국으로 날아올 때 나는 고민에 빠졌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이, 한국어도 못하고 한국 문화도 모르는데 혼자서 한국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그때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온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런 고민에 빠지지 않는다. 지금 나는 한국인과 한국어로 대화하고 한국어로 글을 쓰며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인 남편에게 한국 밥상을 차리는 한국의 새색시다. 지금 나는 프랑스에 갈 일이 생기면 “프랑스에서 김치를 못 먹으면 어쩌지? 어떻게 빵하고 치즈만 먹지?”라는 새로운 고민에 빠진다.

 그래, 나는 그냥 한국에 빠졌다.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만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 한국의 언어, 한국의 문화에 푹 빠진 것이다. 프랑스에는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변한다’는 말이 있다. 내 생각에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나라의 매력에 빠지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것 같다.

 내가 프랑스 사람에게 한국 자랑을 늘어놓으면 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한국에 어떤 매력이 있어요? 프랑스는 아주 로맨틱한 나라인데, 어떻게 한국에서 살 수가 있어요?”

 내 대답은 늘 다음과 같다. “프랑스에서 나는 한국만큼 로맨틱한 분위기를 못 느꼈어요. 한국은 프랑스보다 더 로맨틱한 나라예요.”

프랑스 새색시 에바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소설 『소나기』.

한강 유람선서 바라본 낭만의 노을

이제 내가 겪은 ‘로맨틱 코리아’를 소개할 차례다. 나는 한국에서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한국에 로맨틱한 장소는 정말 수두룩했다. 예를 들어 나는 경기도 양평에 있는 ‘소나기마을’이란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소나기마을은 황순원 작가가 쓴 ‘소나기’라는 한국 소설의 모든 것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에 나는 그 소설을 몰랐지만 줄거리를 듣고 그 순수한 사랑 이야기에 흠뻑 취했다. 슬프면서도 로맨틱한 결말 부분에서 나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렸다. 지금은 ‘소나기’를 소설로도 읽고 영화 DVD로도 본다.

 ‘소나기’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이유다. 내 생각에 ‘소나기’의 주인공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왔기 때문에 흥미를 느꼈다. 서울에서 시골 마을로 이사 온 소녀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어려웠고 외로움을 느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에서 어느 날 문득 한국의 도시로 왔다. 내가 살아왔던 환경과 전혀 다른 장소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때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나는 남편을 만났을 때 프랑스 남자와 달라서 특별하다고 생각했고, 남편 역시 외국인을 만난 적이 없어 나를 특별하게 대했다. ‘소나기’는 바로 그때의 감정을 말하고 있었다. 프랑스 사람인 내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한국 소설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남편하고 전북 남원으로 여행을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남원에서는 광한루를 방문했다. 광한루는 수많은 꽃이 핀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그런데 광한루는 그냥 아름다운 공원이 아니었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깃든 곳이었다. 나는 남원에서 『춘향전』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와 남편은 남원에서 춘향과 몽룡처럼 사랑하기로 약속했다. 그때 나는 한국인이 정말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로맨틱한 매력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2009년 제주도를 갔을 때 섭지코지라는 곳을 방문했다. 거기에서 나는 내가 잘 아는 지중해보다 더 밝은 색깔의 바다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림 같은 경치를 구경하다 작은 성당을 보게 됐다. 너무 예뻐서 놀란 나에게 남편은 한국 드라마 ‘올인’의 세트라고 얘기해 줬다. 나와 남편은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사랑하기로 다시 약속을 했다.

 해 질 녘 한강 유람선을 타고 노을을 바라봤을 때 로맨틱한 분위기를 느꼈고,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봄날의 경주에서도 로맨틱한 한국의 모습을 경험했다. 아직은 못 가 봤지만 남이섬도 그렇게 로맨틱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편과 곧 찾아가고 싶다. 나는 한국에서 정말 날마다 로맨틱한 곳을 발견하며 살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의 로맨틱한 매력은 프랑스 사람마저 반할 만큼 로맨틱하다.

에바 시나피(Eve Sinapi)
1984년 프랑스 마르세유 출생. 프랑스에서 프랑스어 교수법 석사를 마치고, 2003년 관광 목적으로 한국 첫 방문. 이후 한국에서 프랑스어 객원교수 등으로 일하며 한국을 두 차례 더 방문. 2008년 대구에서 만난 한국인 남자와 올 2월 결혼해 대구에서 신접살림 차림. 현재 한국 문화를 열심히 배우고 있음.

정리=손민호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기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