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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맛없는 맛집’ 파헤친 ‘트루맛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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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강혜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방송 3사에서 아침저녁으로 일주일 내내 맛집 정보를 내보내는 것 자체가 좀 수상하긴 했다”(ID abraxas7), “간판에 ××XTV 방영집이라고 쓰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더라. 한심해서 돈만 지불하고 나왔다”(ID rodgerkim), “거짓 정보로 나라를 먹자판 공화국으로 만들어 피 같은 서민의 돈을 헛곳에 쏟아붓게 한 죄”(ID giraffa70).

 TV 맛집 프로의 허울을 까발린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를 소개한 기사(본지 9일자 2면)에 쏟아진 네티즌의 댓글이다. 대부분 격앙된 목소리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맛없는 맛집’에 대한 미스터리가 풀렸다고도 한다. 가짜 식당을 차리면서까지 방송가의 병폐를 밝혀낸 김재환 감독의 용기에 격려를 보내는 목소리도 높다.

 기자는 6일 제작사 사무실에서 ‘트루맛쇼’를 봤다. 고발 다큐란 걸 떠나서 재미난 블랙코미디 느낌이었다. 예컨대 맛집 프로의 패턴 분석. 허름한 집에 욕쟁이 할머니가 있고 소스 재료 중 한 가지는 알려줄 수 없고 손님들은 마냥 “최고예요”를 외친다.

처음 가본 ‘단골집’에서 대본에 적힌 소스 비법을 상찬하는 연예인을 봤을 땐 헛웃음이 났다. 영화적 완결성을 감안해 생략·과장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을 대가로 식당이 TV 전파를 타고 덕분에 매상이 두세 배 뛰어오르는 공식은 웃어 넘길 수 없는 대목이었다.

 불똥은 다른 데로 번질 수 있다. 케이블채널 Y-STAR에서 방영 중인 ‘식신로드’는 최근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을 띄웠다. ‘트루맛쇼’의 제작 의도는 이해하지만 이로 인해 ‘모든 맛집 프로그램은 거짓이다’가 사실인 양 회자되는 게 유감스럽다는 것이다.

‘식신로드’를 제작·연출하는 원창배 PD는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간 숱하게 브로커·식당의 구애를 받았지만 양심대로 제작해왔다. 그런데 이 영화로 인해 각 식당에서 색안경을 쓰니 섭외가 쉽지 않다. 방송을 탔던 진짜 맛집들도 피해가 우려된다”고 했다.

 1주일에 방송 3사에 출연하는 식당이 177곳(2010년 3월 둘째 주, ‘트루맛쇼’ 집계)이나 되는 ‘맛집 공화국’, 분명 정상이 아니다. 이 과정에 브로커가 활개치고 방송 출연을 명목으로 돈이 오간다면 심각한 일이다.

방송3사는 ‘트루맛쇼’ 제작진의 함정 취재에 말려든 것이며 일부 외주제작사·협찬대행사의 문제라고 책임을 돌린다. 더 이상의 블랙코미디를 막기 위한 방송사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

강혜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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