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실패하면 어떻게 정권 재창출 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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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재·보선에서 패배한 뒤 한나라당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이다. 당은 청와대에 패인을 돌리고 친이(친이명박) 주류와 친박(친박근혜) 비주류 사이의 대치 전선은 험악하다. 그런 가운데 초·재선 의원 중심의 소장파가 반기를 들었다. 6일 새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박 연합군과 손잡고 친이 주류를 밀어냈다. 당심(黨心)에 놀란 청와대가 개각에서 실무형 관료들을 발탁하고, 당 지도부는 7일 주류인 정의화 국회부의장을 비상대책위원장에 선임했다. 소장파 의원들은 ‘40대 대표론’을 들고 나온다. 개각의 의미와 40대 대표론의 실체는 뭘까.

이동관 대통령 언론특보는 ‘왕의 남자’로 불린다. 이명박(MB) 정부 출범 후 2년 반 동안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을 지낸 ‘대통령의 입’이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패배 후 홍보수석에서 물러난 이 특보는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겠다”며 입을 닫았다. 그에게 재·보선 패배 후 청와대 분위기를 들었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 나선 것은 홍보수석을 떠난 지난해 7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6일 청와대 창성동별관 그의 사무실에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청년실업, 고물가 등 정책 실패가 재·보선 패배를 불렀다는 게 한나라당 주장이다. 동의하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가 가장 빨리 금융위기에서 탈출했다. 청년실업률 지표도 OECD 국가 중 가장 우수하다. 거시경제 지표는 좋은데 서민들의 체감 부분에서 괴리감이 있다. ‘자기 성공의 희생자’ 혹은 ‘승자의 저주’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빨리 효과적으로 극복해 국가 전체의 거시 지표는 건강한데 경제 회생의 온기가 서민들에겐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시차가 있다. 5세 무상교육 등의 정책 효과가 나타나면 괴리감이 줄어들지 않겠나.”

-청와대와 국회가 국민에게 가장 불신받는 기관이란 조사가 나왔다. 이유가 뭔가.
“우선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숙명이 있다. 게다가 거시경제 지표가 좋게 나올수록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지는 것 같다. 봄볕이 화창할수록 집안의 그늘이 짙어지지 않나. 대통령은 2009년 친서민 중도실용, 지난해 동반성장을 국정지표로 내걸고 불철주야 노력했다. 나는 곁에서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대통령을 왜 하나’ 하는 그런 생각까지 했다. 새벽 4~5시면 일어나서 이것저것 챙겨 읽
고,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하루에 수십 개씩 내린다. 무미건조하게 일 생각하고 나라 걱정하고 재산까지 내놨다. 그런데 민생 괴리 생긴 것 놓고 비판받으니 괴롭고 답답하다.”

-영남권 신공항 등 대형 국책사업이 이리저리 휘둘려 민심이반을 부르지 않았나.
“정부와 여당, 특히 여당은 가치의 DNA를 공유하는 집단이어야 하는데 이해 공유 집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중국과 일본도 허브 개념의 공항은 두 개밖에 안 된다. 신공항을 그만두는 게 옳은 결단이면 다소 손해 봐도 찬성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있다. 세종시 때 대통령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결단했지만 정치권 이해에 따른 반발로 거뒀다. 우리 정치가 지역정치와 3김 정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개각 때마다 회전문 인사 얘기가 나온다. 인재 풀이 그렇게 없나.
“대통령은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자기 철학을 이해하고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 정권을 함께 만든 사람들이 책임감 속에 일하고, 정권 끝나면 평가 받는 게 대통령제에서 정상적인 것이다. 게다가 청문회 때문에 쓸 만한 사람을 찾는 게 어렵다. 5명 고르면 내부 감사에서 1명 살아남는 게 어렵다. 올해 초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를 고를 땐 당초 대상자가 14명이었는데 모두 자체 검증에서 탈락했다고 하더라.”

-대통령은 선거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재·보선 결과에 대해선 그렇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보고를 받고 계셨다. 집권 초 촛불시위를 겪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을 더욱 갖게 됐다. 본인은 그런 일까지 겪었는데 뚜벅뚜벅 가는 거다라고 하신다. 참모들은 정치보다 일에만 중점을 두는 것에서 벗어나 이젠 절반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 (정치에) 골몰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많이 한다.”

-대통령이 중점을 두는 일이란 게 뭔가.
“선진국 진입을 위해 기초를 닦는 것이다. 경제적 인프라 외에도 사회제도적 여러 문제를 포함한다. 부산저축은행서 드러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고치려면 사회·문화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정치 개혁과 관련해선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석패율제가 꼭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이 사사건건 청와대에 끌려다닌다는 ‘호루라기 정당론’을 어떻게 보나.
“호루라기를 불어서 움직일 수 있다면 왜 지금처럼 당이 통제가 안 되겠나. 자기 성찰과 헌신과 희생은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면 해법이 없다. 대통령께서도 그런 부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은 당도 정치 개혁에 앞장서는 등 여권과 보수 전체의 자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변화 요구를 수용해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쓰나미가 닥친다. 가치의 DNA를 성찰하고 공유해야지 기득권만 지키려 해선 미래가 없다는 게 이번 선거 결과 아닌가.”

-한나라당은 여전히 계파 싸움으로 복잡한데.
“정권 재창출의 전제와 출발점은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이다. 그게 안 되면 백약이 무효다. 과거의 대선을 보자. 1997년 이회창 후보의 실패는 기본적으로 여권의 분열이지만 외환위기를 맞은 김영삼 정부의 실패이기도 하다. 노무현 후보는 시종일관 ‘김대중 대통령의 자산과 부채를 승계하겠다’고 약속해 성공했다. 우리나라 유권자를 조사하면 57대 43 정도로 보수가 많다. 그런데 57% 중 17%에 해당하는 사람이 생활형 보수다. 이들이 돌아서면 정권 재창출의 희망이 없다. 대립각을 세우거나 남 탓으로 돌리고, 실패한 정부를 만드는 게 응급처방이 될진 모르지만 가려우니 긁어대는 처방이다. 피
나고 덧난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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