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기통을 4기통으로 줄이고도 가속력 더 좋아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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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호 28면

지난달 독일 뮌헨에서 열린 BMW 이노베이션 데이에서 클라우스 드래거 이사가 이 회사의 경량화 노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독일 뮌헨을 찾았다. 뮌헨은 BMW의 본고장이다. 본사와 박물관, 공장 등 BMW의 핵심 시설이 둥지를 틀었다. 4기통 엔진을 형상화했다는 BMW 본사는 들판에 솟은 피뢰침처럼 도드라졌다. 주변 건물이 워낙 야트막한 탓이다. 원래 뮌헨엔 가로수보다 높은 건물이 금지됐다. 1972년 뮌헨올림픽을 앞두고 고도제한이 풀렸는데, 첫 수혜자가 BMW였다.

뮌헨에서 엿본 BMW의 신기술

본사에서 2㎞ 떨어진 곳엔 BMW의 또 다른 기지가 자리하고 있다. BMW 신기술과 신차의 요람인 연구혁신센터다. 같은 뜻의 독일어 앞 글자만 따서 ‘FIZ(피츠)’로 이름 붙였다. 관문 격인 ‘프로젝트하우스’가 중심이다. 그 뒤로 건물들이 늘어섰다. 담벼락은 없다. 아담한 마을을 이웃한 공과대학 분위기다.

BMW엔 ‘병원’이란 애칭이 따라붙는다. 직원 가운데 ‘박사(닥터)’가 수두룩해서다. BMW에 소속된 연구원은 9000여 명. 그 밖에 협력업체 연구원 5000여 명이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이들 가운데 8000여 명이 뮌헨의 연구혁신센터에 상주한다. 공장의 생산직 근로자 수와 맞먹는다. BMW가 연구개발에 쏟는 정성을 짐작할 수 있다.

연구혁신센터는 87년 문을 열었다. 뮌헨 내 10여 군데에 흩어져 있던 시설을 한데 모았다. 업무 효율을 높여 개발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규모가 본사의 8배나 된다. 개발은 ‘헤쳐 모여’식으로 진행된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해당 부서의 연구원은 프로젝트하우스에서 근무한다. 개발이 끝나면 각자의 건물로 되돌아간다.

BMW 연구혁신센터는 1년에 한 번 대문의 빗장을 푼다. ‘BMW 이노베이션 데이’를 위해서다. BMW가 개발 중인 신기술을 언론에 소개하는 행사다. 이날 아침 일찍 연구혁신센터를 찾았다. 단지가 개방돼 보안이 느슨해 보이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전연 딴판이다. 모든 촬영장비는 입구에 맡겨야 한다. 휴대전화의 렌즈에도 일일이 스티커를 붙인다.

‘BMW 이노베이션 데이’는 행사라기보다 수업에 가깝다. 수준이 전공심화 과정쯤 된다. 몇 나라의 언론매체를 묶어 하나의 그룹을 만들고, 한 그룹당 하루씩 진행한다. 오전과 오후를 4개의 과목으로 나눈다. 각 클래스의 진행과 설명은 개발담당 엔지니어가 맡는다. 수업엔 절개모델과 부품이 아낌없이 동원된다. BMW의 미래를 주제로 한 속성과외나 다름없다.

“성능과 무게, 연료소모율은 서로 대립되는 가치입니다. 팽팽한 삼각형을 이루지요. 우리는 이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개선하고자 합니다. 이 같은 의지가 담긴 BMW의 슬로건이 바로 ‘이피션트 다이내믹스(Efficient Dynamics)’입니다.” BMW 연구개발 이사인 클라우스 드래거(Klaus Draeger) 박사의 환영인사와 함께 ‘2011 BMW 이노베이션 데이’의 막이 올랐다.

그는 BMW의 뒤안길과 청사진도 설명했다. “지난해 BMW 신차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97년보다 30%나 적습니다. BMW 그룹 신차 가운데 52개 차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45g/㎞ 미만이지요. 2013년엔 서브브랜드 i가 출범합니다. 도심용 전기차 i3과 플러그인(충전식) 하이브리드카 i8로 시작합니다. BMW 그룹의 궁극적 목표는 무공해 차입니다.”

드래거 박사의 소개가 끝난 뒤 우린 4개 조로 나뉘어 흩어졌다. 우리 조의 첫 번째 과목은 경량화 기술이었다. 가벼운 차체는 친환경 기술의 장점을 살릴 밑바탕이 된다. 차체가 가벼울수록 엔진의 부담이 작기 때문이다. 그만큼 연료소모율과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낮출 수 있다. 경량화 기술은 디자인과 크기, 뼈대와 설계, 소재의 세 가지 분야로 나뉜다.

행사장엔 재생 종이에 탄소섬유 강화플라스틱(CFRP)을 씌운 보닛이 전시됐다. 강철 보닛의 무게는 18㎏. 하지만 신소재 보닛은 3.3㎏이다. 대시보드는 골격을 마그네슘으로 짜서 30% 감량했다. 휠은 속을 비워 합성수지로 채웠다. 페달과 지지대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고압전선은 구리 대신 알루미늄으로 채웠다. 경량화는 이처럼 눈물겨운 과정의 결실이다.

두 번째 수업의 주제는 규격화 엔진. 배기량 500㏄짜리 실린더를 더하고 빼 직렬 3, 4, 6기통을 만드는 개념이다.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일부 업체가 이런 식으로 엔진의 가짓수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BMW는 설계와 부품은 물론 생산공정까지 완벽하게 규격화했다. 그 결과 이 엔진은 가솔린과 디젤, 가로와 세로 배치를 변화무쌍하게 소화한다.

엔진을 규격화하면 같은 부품이 늘어난다. 그만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BMW 측은 “엔진 제조원가를 최대 4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규격화 엔진이 이윤을 남기기 위한 묘안만은 아니다. 엔진에서 아낀 비용만큼 신기술과 소재를 도입할 여지가 생기는 까닭이다. BMW는 내년까지 규격화 엔진 설비에 3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트윈파워 터보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터보차저는 엔진에 공기를 강제로 압축해서 불어넣는 장치다. 창사 이래 자연흡기 엔진만 고집했던 BMW가 최근 몇 년 사이 터보차저 기술을 다듬는 데 열심이다. 아울러 디젤은 물론 가솔린 엔진까지 연료를 실린더에 직접 뿜는 방식으로 바꿨다. 여기에 가변밸브 기술로 엔진의 들숨과 날숨마저 원활하게 이끈다.

트윈파워 터보는 이처럼 엔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BMW의 갖가지 기술이 함축된 용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낮추려면 엔진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그러면 힘에서 손해를 본다. 이 간극을 메울 기술로 터보차저를 점찍은 것이다.

‘이피션트 다이내믹스’는 사전적 의미처럼 ‘효율’과 ‘재미’의 조합이다. 둘은 상극인 것 같지만 실은 밀접히 연관돼 있다.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기술이 예측변속 시스템이다. 내비게이션의 지도를 확대해 보면 다가올 구간의 도로를 미리 살필 수 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를 활용하면 각 지점의 해발고도까지 알 수 있다. 아울러 지도엔 각 지점의 경고판 정보가 입력돼 있다.

내비게이션만으로 다가올 도로의 기울기와 굽이진 각도, 노면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BMW는 알토란 같은 정보를 자동차의 기능과 짝지었다. 가령 코너 앞에서 운전자는 속도를 줄인다. 그러면 8단 자동변속기는 기어를 낮췄다가 가속과 함께 높여간다. 그런데 코너가 바로 또 나온다면 낮은 기어를 계속 물고 있는 편이 감속과 가속 양쪽에 유리하다.

예측변속 시스템은 지도와 인공위성의 정보를 토대로 몇 단 기어를 놓을지 운전자에 앞서 판단한다. 이 기능은 서스펜션과도 맞물릴 수 있다. 꼬부랑길이 다가올 땐 알아서 단단히 굳히고, 쭉 뻗은 구간에서는 부드럽게 풀어주는 식이다. 운전대의 답력과 기어비도 상황에 맞춰 바꿀 수 있다. 뜬구름 잡는 공상이 아니다. 머지않아 BMW의 신차에 적용될 기술이다.

점심식사 이후 세 번째 수업이 시작됐다. 주제는 전기 동력원. 전기차 양산엔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첫째는 배터리의 성능. 주행거리와 파워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게 숙제다. 둘째는 비용이다. 전기 동력원은 300여 개의 부품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중 30개가 전체 비용의 75%를 차지한다. 이 두 가지 숙제와 씨름한 BMW의 결실이 2013년 선보일 i3이다.

BMW는 이미 미니와 1시리즈의 전기차 버전인 액티브E 컨셉트를 선보였다. 리튬이온 배터리와 모터를 짝지은 7시리즈와 X6 액티브 하이브리드도 판매 중이다. 1970년대 이후 수소연료차 개발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BMW는 “2020년 이후 도심에선 전기차, 수도권에선 충전식 하이브리드카, 교외에선 연비 좋은 내연기관차가 인기를 끌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지막 수업은 시승이었다. 새 엔진으로 거듭난 X1 x드라이브 28i가 주인공이다. 핵심은 ‘줄이기’로 요약할 수 있다. 6기통 3.0L 엔진을 4기통 2.0L로 대체했다. 최고출력은 245마력으로 이전보다 13마력 줄었다. 하지만 최대토크는 오히려 더 높다. 가속도 빨라졌다. 시속 100㎞ 가속을 0.7초 단축한 6.1초에 끊는다.

X1 x드라이브 28i는 아우토반 1차선을 거침없이 꿰찼다. 시승을 마치면서 ‘2011 BMW 이노베이션 데이’의 일정도 막을 내렸다. 빡빡한 수업으로 머리는 무거웠지만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은밀히 엿본 BMW의 신기술을, 조만간 도로에서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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