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는 웁니다’ 진방남, 녹음 직전 모친 부고에 통곡하며 노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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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호 10면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이제 익숙해졌지만 어버이날이란 말이 낯설던 시절이 있었다. 이날을 기념하기 시작한 1956년부터 72년까지 이날은 줄곧 어머니날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까지 기억하라고 ‘어버이날’로 명칭과 성격을 바꾸기 시작한 것은 73년부터니, 72년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창한 10월 유신 이후 남들이 뭐라 하건 거침없이 밀어붙였던 당시의 분위기가 생생히 읽힌다.

이영미의 7080 노래방 <8> 가요 속의 어머니와 자식들

그러나 아버지의 은혜도 잊지 말라는 전능한 가부장적 정권의 지시에도, 대중의 감수성은 오랫동안 어머니 주변만을 맴돌았다. 그것은 (지금의 아버지들은 펄쩍 뛸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어머니가 아버지에 비해 약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자인 아버지가 이래라 저래라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라면, 어머니는 자식의 모든 것을 받아주고 뒷바라지해주며 스스로를 낮추는 존재였으니 자식이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더 애틋한 정을 느낀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노래에서도 이런 현상은 뚜렷이 나타난다. 심지어 오랫동안 어머니에 대한 대중가요는 애틋하다 못해 회한과 통곡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 어머니여 /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진방남의 ‘불효자는 웁니다’, 1940, 김영일 작사, 이재호 작곡)가수 진방남이 녹음 스튜디오에서 실제로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 통곡하듯 노래를 불렀고 그것이 그의 최초 히트곡이 되었다는 드라마 같은 일화를 담고 있는 이 곡은, 어머니를 다룬 트로트 곡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그 핵심적 감정은 ‘죄책감’이고, 이런 감정은 80년대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에까지 이어진다.

어머니란 말이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고 가슴 한구석을 찌르르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노래가 늘 통곡과 죄책감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은 다소 과잉된 감정이다. 사실 이런 노래의 태반이 돌아가신 어머니, 만날 수 없는 어머니를 설정하고 있다는 것은 통곡과 죄책감이라는 극단적 감정을 만들기 위한 극적 설정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경향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누가 만든 길이냐 나만이 가야 할 슬픈 길이냐 / 철없는 들국화야 너를 버리고 남몰래 숨어서 눈물 흘리며 아아 아아아 / 떠나는 이 엄마 원망을 마라”(이미자의 ‘들국화’, 1965, 월견초 작사, 이인권 작곡)

딸자식을 버린 어머니가 부르는 통곡의 노래로 지금 보자면 다소 희한한 노래일 수 있다. 가난하던 60년대엔 어쩔 수 없이 딸을 버리는 부모가 종종 있었다. 사실 이 노래는 그런 구체적 사실성보다는 어머니가 지닌 자식에 대한 죄책감과 회한의 감정을 건드렸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어머니와 자식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죄책감. 이것은 참으로 오랫동안 우리나라 대중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아마 우리 사회의 어머니(아버지가 아닌)와 자식이 과도하게 정서적으로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험악하고 아버지(남편)는 그 험악한 세상 속에 휩쓸려버린 상황. 힘도 능력도 없는 어머니(아내)와 자식이 부둥켜안고 모진 생명을 유지해왔던 20세기 초·중반 한국의 역사가 이런 경향을 만들어냈으리라. 그러니 어머니와 자식은 서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자기 연민을 느끼고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 서로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과잉의 죄책감은 과잉된 기대감과 동전의 양면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조금만 소홀해도 엄청나게 섭섭해 한다.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통곡의 과잉된 감정이 다소 절제되고 다소 정상적인 그리움과 사랑으로 내려앉은 것은 확실히 70년대 이후의 일인 듯싶다. 유주용의 ‘부모’가 소월의 시를 가사로 하여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니하고 (중략)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라는 차분한 추억을 노래한 시기가 68년이다. 이후 70~80년대에 이르러서 ‘어머님 팔벼개에 얼굴을 묻고 꿈을 받던 어린 내가 / 어언간 엄마 되어 꿈을 주는 팔벼개 되었네’로 시작하는 김상희의 ‘팔벼개’(1972)나, ‘어머님은 된장국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고 / 고기 잡는 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리신다’의 구절이 가슴을 울렸던 박양숙의 ‘어부의 노래’(1980) 같은 잔잔한 그리움의 감정이 보편화된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설정으로 절절한 그리움을 만들어내지 않고, 그저 내 곁에 있는 어머니를 차분히 바라보며 노래하는 노래가 나오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먼 길을 거쳐 왔던가.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니 /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 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 주려 하셨나 보다 / (중략) /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걸”(김창완<사진>의 ‘어머니와 고등어’, 1983, 김창완 작사·작곡)

술 마시고 들어와 한밤중에 냉수 찾는 나이가 되어서도 엄마만 봐도 좋다고 노래하는 자신을 스스로 ‘바보’라고 말하는 것이나, 이렇게 경쾌한 음악으로 코 고는 어머니와 비린내 나는 고등어를 포착해 내는 일상적 시선은 참으로 새로운 것이었다.세상이 모두 ‘쿨해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다 큰 자식의 모든 일상에 끝까지 함께하고 싶어 하는 과잉된 기대감의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무한히 의존하며 다른 한편 죄책감 느끼는 자식, 이 헌신과 죄책감이 뒤범벅된 어미 자식 관계는 좀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어버이날, 우리는 이런 감정을 어떻게 추스르고 있는가.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와 『광화문 연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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