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저축은행 비리 협조한 공직자, 용서 받아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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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빼자” 제일저축은행 북새통 4일 오전 제일저축은행 서울 장충지점에 수많은 고객이 몰려들어 예금을 찾고 있다. 이 저축은행은 한 임직원 이 금품을 받고 거액을 불법으로 대출해 준 사실이 드러난 이후 예금 인출 사태를 겪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오전 출근하자마자 참모들에게 금융감독원에 가겠다고 했다. 그게 금감원에 통보된 때는 오전 8시. 그로부터 1시간52분 뒤 이 대통령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금감원에 들어섰다. 점퍼 차림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맞은 권혁세 금감원장과 금감원 간부 30여 명을 앞에 두고 “사전 예고 없이 방문했다. 좋은 일로 방문한 게 아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여러분이 한 역할에 대해, 부산저축은행 등 대주주와 경영진의 용서받기 힘든 비리를 저지른 데 대해, 저 자신도 국민도 분노에 앞서서 슬픔을 느끼고 있다”며 “금감원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라고 질책했다.

 이어 금감원 직원들이 민간 금융기관 감사 등으로 재취업하는 전관예우 관행에 대해서 따끔한 지적을 가했다. 그러면서 “금감원의 잘못된 행태가 해묵은 문제이며, 이참에 금감원이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부산저축은행 비리에 협조한 공직자에 대해선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이 대통령은 20여 분간 질책하면서 “분노한다”라는 말을 두 번 썼다. 금감원 개혁을 당부하면서는 “부탁한다”는 말도 두 번 했다. 다음은 주제별 이 대통령 발언.

 ◆“문제는 못 찾는 건가 안 찾는 건가”=새롭게 부임한 (권혁세) 금감원장이 많은 걸 개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금감원은 어제오늘 한두 번 위기를 맞았던 게 아니다. 그때마다 개혁 얘기를 했을 걸로 짐작한다. 금융은 신용을 갖고 사는 기관이다. 신용과 신뢰가 떨어지면 중대한 문제가 생긴다. 저축은행의 현재 비리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를 못 찾는 것인지 안 찾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지금 나타나진 않지만 이런 비리와 문제가 잠복해 있을 거다. 여러분은 신분을 보장받지만 국민의 분노는 법을 갖고 여러분의 신분을 지키기엔…, 스스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공정사회가 아니다”=대한민국 국민이 피땀 흘려 낸 세금으로 몇몇 대주주의 힘을 가진 사람,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보상한다면 그건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나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겠다. 세계의 높아진 인식에도 우리 사회 곳곳엔 후진국에 있을 법한 비리들이 아직 존재한다. 적절한 시간이 지나면 이번 일에 대해 넘어갈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금감원장과 금융위원장은 이런 위기 앞에 영원히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조직이 잠시 살기 위해 편법으로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은퇴 후 나쁜 관습에 합세”=전직 금감원 출신이 나한테 인터넷(e-메일)을 보냈다. ‘금감원을 떠나기 몇 년 전에는 다음 갈 자리를 위한 보직에 대해 관리하는 관습이 금감원에 있다. 이제는 자백한다’는 거다. 난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러분 중 수긍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 보직 관리에 들어간 간부도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금감원) 1500명 직원의 평균 임금은 9000만원 가까이 될 거다. 높은 수준의 급료를 받다가 은퇴한 이후 나쁜 관습에 합세했다는 건, (금감원에) 남아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조차 국민에게 나쁜 인상을 준다.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겠지만 10~20년 선배들의 잘못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걸 감지해 왔다. 그게 시정되지 않고 그 전통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개혁) TF를 구성하라”=비리를 저지른 (부산저축은행의) 대주주와 경영자, 이에 합세한 공직자는 검찰에 의해 철저히 조사받을 것으로 안다. 감사원도 여러분의 조직을 점검하는 것으로 안다. 금감원에서도 (개혁과 관련해) 많은 제안을 했다. 그러나 여러분의 손만으로 하기엔, 과거를 보면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라. 국가적으로 여러분이 하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분 스스로 못 느끼고 있다. 이번 기회에 금감원이 철저한 감독 역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이 되도록 뼈를 깎는 자기 희생을 해달라.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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