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 해외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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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부산저축은행 그룹의 불법 대출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김홍일)는 4일 이 그룹이 해외 부동산 시행사업에 5239억원대의 자금을 투자한 사실을 밝혀내고 이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이 조성됐는지 조사 중이다. 해외 부동산 투자는 박연호(61·구속기소) 회장 등이 서민 예금 5조원을 빼돌려 설립한 120개의 위장 특수목적회사(SPC) 중 10개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해외 투자금의 95%인 4965억원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방식으로 캄보디아의 신도시·공항·섬·고속도로 개발사업에 투자됐다. 그러나 수도 프놈펜 외곽에 총 20억 달러 규모의 신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인 ‘캄코시티’ 건설 등 대부분의 사업이 중단 상태다. 위장 SPC 중 하나인 F사는 지난해 4월 캄보디아 공항 건설사업을 위해 설립돼 425억원을 대출받았으나 부지도 매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해외 대출이 1999~2008년 사이 장기간에 걸쳐 캄보디아 개발사업에 집중됐음에도 금융당국이 적발하지 못한 배경에 금품 로비가 있었는지도 수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해외 대출을 포함해 사업별 불법 대출 경위와 사업 승인·감독 과정에서의 불법 여부 등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실적 압박에 후순위채권 샀다 1억원 날려”=부산저축은행 예금자 비상대책위원회 김옥주 위원장은 4일 금감원 부산지원 앞에서 “부산저축은행 직원들이 황모씨 등 예금자의 인감을 본인 동의 없이 복사한 뒤 보통예금 통장을 후순위채권으로 바꿨다”며 변조된 후순위채권 통장 10여 개를 공개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황씨는 지난달 예금보험공사에 예금 피해 보상 가지급금 2000만원을 받으러 갔다가 “후순위채권이라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니다”는 말을 듣고 예금 종류가 변조된 사실을 알았다.

 “박 회장과 김양(59) 부회장 등 부산저축은행 대주주·경영진이 은행 경영이 악화된 지난해 말부터 영업정지 직전까지 직원들에게 후순위채권을 판매하도록 독려했다”는 부산저축은행 내부 직원의 증언도 나왔다. 은행의 한 직원은 “지난해부터 후순위채권 판매 실적을 인사고과에 반영했고 팀별로 책임 판매량을 할당했다”며 “직원 10여 명이 실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본인 돈으로 후순위채권을 사들였다가 수천만원씩을 손해 봤고 1억원 이상을 날린 직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주주와 경영진은 후순위채권 판매를 통해 수신고가 늘어나면 자기자본비율(BIS 비율)이 높아져 우량은행으로 포장할 수 있고 영업정지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월 영업정지 사태로 부산저축은행 그룹 산하 5개 은행에서 후순위채권을 매입한 2947명이 총 1132억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부산=임현주 기자

◆후순위채권=금리가 다른 채권보다 높지만 기업이 파산할 경우 다른 채권자들에 대한 부채가 청산된 다음 상환받을 수 있는 채권. 예금자보호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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