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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 사살 생중계 … VIP석 군인에게 내주고 쪼그리고 앉은 오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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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파키스탄 군과 경찰이 2일(현지시간)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머물던 저택 주변을 무장을 한 채 순찰하고 있다. 가운데 보이는 3층짜리 하얀 저택이 빈 라덴의 은신처다. 9·11 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은 2일 새벽 이 저택에서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에 의해 사살되며 10년간의 도피생활을 마감했다. [아보타바드 AP=연합뉴스]


일요일이던 1일 오전 9시42분(현지시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흰색 셔츠에 짙은 색 재킷, 카키색 바지를 걸치고 백악관을 나섰다. 그는 인근 세인트 앤드루스 공군기지의 군 골프장에 가서 골프를 쳤다. 익숙한 휴일 표정이었다. 그러나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은 9홀 플레이를 마칠 때까지만이었다. 오바마는 추위를 핑계로 골프를 중단하고 오후 2시4분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골프 복장과 신발 그대로 지하 1층 상황실로 향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을 비롯한 고위 국가안보팀 멤버가 모두 모여 있었다.

 오바마는 격식을 차리지 않고 맨 가운데 대통령 의자를 특수전 전문가인 마셜 웹 합동특수전사령부 부사령관에게 양보했다. 대신 그 옆의 낮은 의자에 쪼그리듯 앉았다. 군복 정장 차림의 웹 준장은 스크린에 나타나는 작전 상황에 대한 보충설명을 했다. 작전 상황 설명은 리언 패네타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버지니아주 랭글리의 CIA 본부에서 화상을 통해 했다.

 사흘 전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제거 작전을 승인한 오바마는 참석자들과 함께 약 두 시간 뒤 시작될 작전을 최종 점검했다. 오후 4시15분쯤 상황실 대형 스크린이 작동했다.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대원들의 헬멧 등에 장착된 비디오 카메라가 현장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내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원들을 태운 4대의 헬리콥터가 빈 라덴 은신처에 진입했다. 순간 헬리콥터 1대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기술적 결함이었다. 작전 실패에 대한 우려가 상황실을 뒤덮었다. 1980년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사건 당시 구출팀이 헬기 고장으로 작전에 실패한 악몽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한 사고였다. 하지만 곧바로 원래 계획을 수정한 ‘플랜 B’ 작전이 하달됐다.

 무장한 네이비실 대원들이 은신처 안으로 진입하자 빈 라덴의 모습이 스크린에 처음 나타났다. 숨죽이며 지켜보던 상황실에서 “오~” 하는 안도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빈 라덴의 은신처가 확실하다는 사실을 육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빈 라덴은 AK-47 자동소총을 쏘아대며 저항했다. 그러나 결국 네이비실 대원이 쏜 총에 왼쪽 눈을 맞고 쓰러졌다. 상황실 내 유일한 여성 멤버였던 클린턴 장관은 충격적인 장면에 입을 손으로 막았다. 요원들이 빈 라덴의 시신을 수습해 나오면서 40분에 걸친 작전은 종료됐다.

 존 브레넌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은 2일 브리핑에서 “작전 개시부터 목표물 발견, 시신 이동 등에 이르기까지 작전의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고 밝혔다. 그는 “40분 내내 극도의 긴장과 침묵이 이어졌다”고 상황실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수십 분이 마치 며칠과 같았다”며 “백악관 상황실에 모여 이를 지켜본 사람들 모두 생애에서 가장 초조하고 불안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전을 앞두고 예정대로 골프까지 치며 평정을 유지하려 했던 오바마의 ‘포커 페이스’ 얼굴에도 이 순간만은 놀라움과 긴장의 표정이 역력했다. 브레넌 보좌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했으며, 미국인 대원들의 안전을 가장 염려했다”고 전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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