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7명이 35조원을 굴린다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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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심상복
논설위원

7명이 35조원을 주식에 굴린다고? 정말이다. 그런데 이 돈, 규모도 규모지만 예사 돈이 아니다. 국민이 자신의 노후를 위해 맡긴 아주 소중한 돈이다. 국민연금 얘기다. 그런데 이 인원으로 괜찮을까.

 올 3월 말 현재 국민연금에 쌓인 돈은 333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주식에 투자한 돈이 82조원쯤(국내 주식 61조원, 해외 주식 21조원) 된다. 이 중 국민연금 직원이 직접 운용하는 주식이 35조원(국내 32조원, 해외 3조원)이다. 나머지는 외부의 전문운용사에 맡겨 놓고 있다. 리서치팀이 따로 있긴 하지만 35조원을 굴리는 직원은 고작 7명이다. 한 명당 평균 5조원이니 투자의 달인을 넘어 초능력자쯤 될까. 아니면 깊은 고민 없이, 망하기 어려운 우량 대기업 위주로 사면 되는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 주식을 사들인 기업은 대부분 그렇다. 삼성전자·현대차·포스코·LG화학·하이닉스·SK에너지·대한항공 등이다. 국민연금은 우리·신한·KB·하나 등 4대 금융지주회사의 최대주주로도 등극한 상태다.

 “대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의 지난주 발언이 한참 더 논란을 일으킬 전망이다. 그의 발언이 전해진 뒤 많은 전문가와 언론은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앞서 국민연금의 독립성부터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처럼 정부 입김이 강한 상태에서는 관치(官治) 논란만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곽 위원장도 같은 생각임을 밝혔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이번에 국민연금 독립 문제를 결론 냈으면 한다. 이 문제는 2003년 기금 규모가 100조원을 넘으면서 처음 공론화됐다. 그해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만들어졌고, 다음 해에도 같은 시도가 있었으나 국회 회기가 종료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2008년 8월 세 번째 안이 마련됐다. 기금 운영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특수법인 형태의 ‘기금운영공사’를 만든다는 것이 골자다. 현재 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하는 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며 경제부처 차관, 한국경총·전경련 등 재계 대표, 노동계 대표 등 20명으로 돼 있다. 정부의 말발이 먹히는 구조다. 개정안은 이런 기금운용위원회를 금융·투자 전문가 7명으로만 구성하도록 했다. 그런데 국회 상정 직후 월가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개정안은 깊은 수면에 빠져들었다.

 국민연금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이미 채권 비중은 줄이고 주식 투자는 늘려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인력을 더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로부터 인원과 예산을 통제받는 현 여건에서는 쉽지 않다. 7명의 주식운용팀이 왜소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받는 보수는 성과급을 포함하면 민간업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경력 쌓기용으로 국민연금에 취직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상태에선 최고의 인력으로 국민의 노후를 확실하게 책임진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전문가적 식견으로 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독립해야 한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그 뒤에 논해도 늦지 않다.

심상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