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페티〈Full Moon Feve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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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하거나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이들에게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ingsteen)이나 밥 시거(Bob Seger) 등의 음악은 웬지 심심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음악 매니아라고 자처하는 사람치고 정통 아메리칸 록을 선호하는 이는 그리 찾아보기 힘들다.

"버터 맛이 느껴진다"거나,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는 말로 이런 현상을 합리화시키기도 하지만 요즘 대중문화의 화두로 떠오른 테크노(Techno)가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선 찬밥 신세였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는 모순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1995년, 후티 앤 더 블로우피쉬(Hootie & The Blowfish)의 상업적 성공으로 '루츠 록(Roots Rock)'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부각된 정통 아메리칸 록 음악의 이면을 살펴보기 위해선 1980년대 후반 음악계의 주요한 흐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의 〈Cloud 9〉(1987년), 트래블링 윌버리즈(Traveling Wilburys. 밥 딜런, 조지 해리슨, 제프 린, 로이 오비슨, 톰 페티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의 〈Vol.1〉, 로이 오비슨 (Roy Orbison)의 〈Mystery Girl〉(1988년),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톰 페티의 〈Full Moon Fever〉(1989년)는 당시 본 조비 (Bon Jovi), 데프 레파드 (Def Leppard)등의 헤비메틀과 바비 브라운 (Bobby Brown), 폴라 압둘 (Paula Abdul), 뉴 키즈 온 더 블록 (New Kids On The Block) 같은 팝/댄스 음악이 대세를 장악한 80년대 후반 음악계의 흐름과는 반대되는 복고적인 사운드로 음악 팬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여기엔 제프 린(Jeff Lynne)이란 공통 분모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제프 린은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 E.L.O)의 리더로서 'Midnight Blue', 'Ticket To The Moon'등의 명곡을 만들어낸 장본인. 그의 프로듀싱 솜씨가 돋보였던 이들 작품들은 소위 한물갔다고 여겨지던 노장 뮤지션들의 재기에 발판 역할을 했다.

톰 페티의 〈Full Moon Fever〉는 이러한 '제프 린 표 음악'의 완결판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작품이다. 보통 톰 페티의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Damn The Torpedoes〉(1979년)나 〈Hard Promises〉(1982년)를 꼽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실제로 이 음반들은 펑크와 디스코, 뉴웨이브라는 새로운 물결이 기존 음악 사조를 위협하던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걸쳐 스틱스(Styx), 저니(Journey), 알이오 스피드웨건(R.E.O Speedwagon), 포리너(Foreigner) 등 A.O.R(Adult Oriented Rock) 계열의 밴드들과 함께 미국 록 음악계의 방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자신의 백업 밴드 하트브레이커스(The Heartbreakers)의 이름을 떼고 공개한 〈Full Moon Fever〉(1989년)는 이전 톰 페티의 음악 작업이 무색케 할 만큼의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싱글로 발표되어 인기를 얻었던 포크 록 스타일의 첫곡 'Free Fallin' '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쉽게 느낄 수 있는데 엘비스를 좋아하는 소녀와 그를 사모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가사에서 "더이상 은둔자처럼 살 필요는 없어" ('Refugee') 라고 말하던 반항적인 이미지의 이전에 비해 유연해진 톰 페티를 만날 수 있다. 'Alright For Now'와 함께 다분히 밥 딜런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註:1986년 하트브레이커스는 밥 딜런의 백 밴드로 순회공연을 벌인바 있다.)

음반에서 가장 크게 히트를 기록한 'I Won' t Back Down', 파퓰러한 구성의 'Love Is A Long Road' ,하트브레이커스의 기타리스트 마이크 캠벨(Mike Campbell)의 장황한 기타 솔로가 다소 귀에 거슬리는 'Running Down A Dream'등 비교적 하트브레이커스의 음악적 노선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곡들로 짜여진 A면 (LP기준)에 비해 〈Full Moon Fever〉의 진가는 B면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조지 해리슨, 로이 오비슨 등이 수고해준 코러스나 기타 톤, 그리고 드럼의 세팅 등 세밀한 면을 살펴보면 'Don’t Bring Me Down', 'Rock’n Roll Is King'으로 대표되는 복고풍의 록큰롤을 연주하던 E.L.O의 모습을 상당 부분 닮아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러닝 타임이 4분을 넘는 곡들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윌버리즈' 프로젝트의 연장선에 있는 'Full Moon Fever'는 철저히 60년대식 2∼3분짜리 '팝송'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고 있지만 이는 모방이나 답습이 아닌, 아티스트의 개성을 살리기 위한 부수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각각 비틀즈(The Beatles)와 버즈(The Byrds)의 음악을 연상케 하는 'Feel A Whole Lot Better'와 'Depending On You', 60년대 인기 여성 가수, 카니 프란시스 (Connie Francis)의 노래 'A Heart With A Mind Of Its Own'에서 제목을 패러디한 'A Mind With A Heart Of Its Own' 같은 경쾌한 록큰롤 넘버들은 이를 증명하는 좋은 예일 것이다. 또한1990년대 모던 록의 요소를 짐작케 하는 간결한 기타의 스트로크나 베이스, 드럼의 리듬 전개에서 훗날 록 음악의 흐름을 한발 앞지르는 톰 페티만의 앞선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아쉽지만 제프 린의 음악적 성과도 'Full Moon Fever'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스님이 제머리 못깎는다는 옛말처럼 1990년에 공개한 자신의 솔로 음반 'Armchair Theatre'는 예전의 감각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평범한 음반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인과의 지리한 이혼 소송으로 인해 현재까지 별다른 음악 활동을 보이지 못하면서 재능을 소모하고 있어 그를 기억하는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반면 톰 페티는 다시 하트브레이커스와 함께 만든 'Into The Great Wide Open'(1991년), 음악계의 기인 릭 루빈(Rick Rubin)이 제작한 두번째 솔로 음반 'Wild Flowers'(1994년. 워너로 이적하여 내놓은 첫 작품이기도 함)등의 작품으로 변함없이 상업성과 음악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록곡

1. Free Fallin’
2. I Won’t Back Down
3. Love Is A Long Road
4. A Face In The Crowd
5. Runnin’ Down A Dream
6. Feel A Whole Lot Better
7. Yer So Bad
8. Depending On You
9. The Apartment Song
10. Alright For Now
11. A Mind With A Heart Of Its Own
12. Zombie 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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