油價·금리·환율… '新3苦'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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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국제 금융 및 원자재 시장이 들썩거리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합의 연장에 따른 국제원유가 폭등, 선진국의 금리인상과 개도국의 자금수요에 의한 국제금리의 상승, 일본의 정책적 시장개입으로 인한 엔저현상…. 이 모든 것이 한국 경제에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원유가와 금리의 상승은 기업들의 비용부담으로 이어지고 엔저는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깎아내린다. 월드마켓의 불안한 움직임들을 국제원유가.국제금리.환율을 중심으로 짚어본다.

◇ 유가〓지난해말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가 올 연초 다시 치솟기 시작하면서 전세계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저기서 인플레이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고, 이는 다시 전세계적으로 금리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올초 24달러선에서 출발한 뉴욕상품시장의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2월 인도분은 지난 11일부터 연 4일간 급속히 올라 30달러선에 육박했다.

유가의 급등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당초 올3월까지만 감산을 하기로 약속해놓고는 이를 연장키로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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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쿠웨이트.베네수엘라 등 주요 회원국들이 감산연장에 매우 적극적인 가운데 현재 ▶3개월▶6개월▶9개월 연장설이 대두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6개월 연장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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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의 감산연장이 현실화되면 당장 각국의 석유수급기조에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15~0.3%포인트 상승한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국제수지도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수입 8억7천만달러 증가▶수출 1억7천만달러 감소의 효과를 초래한다. 특히 정유.항공 등 원유값 상승에 민감한 업종과 조선.자동차 등 원화 절상에 민감한 산업이 큰 타격을 볼 전망이다.

유가상승은 최근 기지개를 켜고 있는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채산성 악화를 초래해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유가가 30달러선을 뚫고 고공비행할 가능성은 일단 적어 보인다. OPEC으로서도 석유 소비국들의 수요감소 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다가 비(非)OPEC 산유국들의 증산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 금리〓영국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인상을 검토하고 나서는가 하면 미국에서도 장기금리가 속등하고 있다.

ECB는 원유가 및 임금이 오르자 인플레를 막기 위해 1분기중 금리인상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CB는 지난 주말 정책보고서에서 "최근 몇개월의 물가상승이 만성적인 인플레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지적했다. 인플레에 대해 주시하고 있으며 여차하면 대응방안(금리인상)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장기금리 지표인 30년 만기 재무부채권 수익률도 지난 한해동안1%포인트나 올라 2년 반만의 최고치인 연 6.6~6.7%에 이르고 있다. 이것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단기금리 재인상으로 이어질 경우 장기금리는 최악의 경우 연 7.5%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각국 중앙은행이 지난해말 Y2K에 대비해 풀어놓았던 자금을 본격적으로 회수할 경우 국제자금시장이 위축될 것은 불보듯 하다.

이에 따라 유럽 국가들은 금리가 오르기 전에 발빠르게 대규모 국채발행을 서두르고 있다. 포르투갈이 25억유로, 오스트리아가 30억유로를 이달중 발행키로 했으며 그리스.벨기에도 각각 20억유로 규모의 국채발행을 준비중이다. 여기에다 아시아와 중남미가 경기회복과 함께 국제금융시장에서 새로운 돈줄을 찾아 나서고 있어 국제적인 금리상승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경우 기업의 해외차입 여건이 악화되고, 해외에서 변동금리부 채권을 발행한 기업은 금리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미 웰스파고은행의 부행장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손성원(孫聖源)박사는 "미국 기업.가계의 과다차입 및 무역적자가 이머징 마켓의 신규 자금수요와 맞물려 국제적인 금리인상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있다" 고 말했다.

◇ 환율(엔低)〓지난해말까지만 해도 일본의 경기회복에 따라 올초에는 달러당 90엔대의 엔고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일본은행이 새해 첫 외환시장이 서자마자 엔화를 마구 풀어 엔저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헷지펀드들이 미국의 주가폭락으로 입은 손실을 일본주식을 처분해 보전하는 통에 엔화 매도주문이 몰려든 것도 엔저의 배경이 됐다.

일본 대장성은 여세를 몰아 오는 22일 도쿄(東京)에서 열리는 선진 7개국(G7)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엔고 방지를 위한 국제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있다. 세계경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일본의 경기회복이 중요하며, 엔저는 그 전제가 된다는 논리다. 대장성은 선진국과의 공조를 통해 상반기중 달러당 1백5~1백10엔으로 묶어놓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G7 회원국들의 반응은 다소 냉담하다. 특히 미국은 일본의 인위적인 엔저 노력을 굳이 막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공동보조를 취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엔고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완화한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길 정도다. 일본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木+神原英資)전 대장성 재무관은 "엔화가치는 달러당 1백6엔대로 떨어진 뒤 반등해 오름세를 타게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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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만일 일본의 의도대로 엔저 기조가 한동안 이어질 경우 회복단계에 막 들어선 아시아로서는 부담이 커진다. 자동차.가전 등 주요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환율 천수답' 으로 불릴 정도로 엔화의 등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한국의 기업들이 더 그렇다.

워싱턴.뉴욕.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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