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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왜 종가음식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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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온 큰집이 종가(宗家)다. 종가가 이이·이황 등 조선의 걸출한 인재만 길러낸 것이 아니다. 슬로푸드(slow food)이자 정성이 가득 담긴 종가 음식의 산실이 되었다. 웰빙 열풍에 힘입어 종가 음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최근 높아지고 있다. 17일 오전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열린 ‘남산골 우리 종가 이야기’ 행사에서도 종가 음식 레시피·시식회·시음회에 사람들이 몰렸다.

 종가 음식은 궁궐(궁중 음식), 절(사찰 음식), 서울의 양반가(반가 음식)가 아닌 각 지방 종갓집의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위한 상차림이다.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고 제사를 받는 사례(四禮)를 잘 치르기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종가의 맏며느리인 종부(宗婦)의 ‘손맛’이다.

 요즘 사람들이 종가 음식에 대해 갖는 막연한 오해와 편견 세 가지가 있다. 손이 너무 많이 가서 대중과는 동떨어진 음식, 현대인의 입맛엔 잘 맞지 않는 고전적 음식, 상다리가 휠 만큼 산해진미여서 허례가 심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만들 때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요즘은 건강을 위해 일부러 슬로푸드를 찾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가족 건강을 위해 식재료의 손질에서 조리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장점이자 매력이다. 김치·젓갈·장 등 발효음식은 미생물이 자신의 역할(발효)을 다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슬로푸드의 전형이다(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전통한식과 김영 연구관).

 종가 음식은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맛이 담백하다. 몇 번 즐기다 보면 깊은 맛에 빠지게 된다. 전남 순창 안동 권씨 가문의 이기남 할머니(종부)는 “꼬막을 삶을 때 꼬막의 입이 탁 벌어지려는 그 순간에 건져야 가장 맛이 있으나 그 시점을 놓친 꼬막을 상에 올리면 시아버님은 밥상을 마당으로 내던졌다”고 회상했다. 종가 음식은 까다로운 집안 어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종가 음식이 격식을 중시하고 식생활에서 상스러움을 피하려고 애쓴 것은 사실이다. 특히 제사를 모실 때는 조상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의미를 담아 최고의 음식을 장만했다. 하지만 가문의 위신·권위를 위해 형편에 맞지 않는 값비싼 식재료를 사용하거나 외관에 치중하진 않았다. ‘한 상 가득’ 올려 음식물 쓰레기를 양산하는 교자상은 우리의 전통 식생활과는 거리가 있다. 선조의 원래 상차림은 외상 차림이었다(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

 콩과 장(醬)을 식재료로 많이 사용하는 것도 종가 음식이 건강에 유익한 이유다.

  『성호사설』을 쓴 조선의 실학자 이익은 잡곡밥에 된장·고추장·김치·나물을 반찬 삼아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았다. 그는 콩으로 만든 세 가지 음식(된장·콩나물·콩죽)을 먹으며 시를 짓는 ‘삼두회’(三豆會)를 조직했다. 콩을 예찬하고 즐겨 먹은 덕분인지 어릴 때 병약했던 그는 당시로선 장수인 83세까지 살았다. 콩을 재료로 한 종가 음식 중엔 콩밥, 삶은 배추 된장무침, 돼지고기에 된장을 넣고 삶은 수육 등이 있다. 충북 청원의 문화 류씨 종가는 봄엔 빠금장, 여름엔 된장, 가을엔 담북장 등 계절마다 다른 방법으로 별미 장을 담갔다.

 지역에서 나는 제철 농산물, 즉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종가 음식의 강점이다. 종가 음식이 향토 음식의 보고이자 로컬푸드의 원조로 평가되는 것은 이래서다.

 종가 음식은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문제는 조리법이 대부분 기록되지 않고 구두로만 전해져 레시피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종부들도 종택(宗宅)을 떠나고 있다. 종가 음식을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음식 한류’ 붐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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