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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패배가 충격이라는데 진짜로 민심을 몰랐단 말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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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호 05면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했다. 특히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한나라당 텃밭에서의 패배는 충격적이었다. 어느 지역보다 보수적이라는 강원도에서조차 스타 앵커 출신 후보를 내세우고도 허망하게 무너졌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뭘 반성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선거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보수 진영의 원로인 인명진(65·사진) 갈릴리교회 목사를 만났다. 2006년 10월부터 2년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두 시간 넘게 매서운 비판과 충고를 쏟아냈다.

인명진 목사가 한나라당에 보내는 쓴소리

대통령, 국민에게 져야 감동 줄 수 있어
-4·27 재·보선 결과를 어떻게 보나.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냉엄한 평가다. 한나라당은 선거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더욱 충격을 받았다. 아니, 민심을 진짜 몰랐단 말인가.”

-한나라당 텃밭인 성남 분당을에서도 졌다.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명박 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 정부에서 너무 홀대를 받더니만 이번에 또 희생양이 됐다. 이번 선거는 강 전 대표나 한나라당에 대한 투표가 아니라 사실상 이명박 정부를 향한 투표였지 않나 싶다. 내가 분당을 유권자였더라도 손 대표를 찍었을지 모른다.”

-MB 정부가 뭘 그리 잘못했나.
“선거 결과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당에서 다 준비한 거 아니냐. MB 정부는 책임질 일 없다’고 했다던데, 그런 인식을 가지고 대통령을 보좌하니까 정권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그렇게 혼나고서도 국민의 질책과 경고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 밀어붙이기만 하니 국민이 단단히 화가 난 거다. 분당을 투표율 49.1%가 뭘 의미하겠나. 지금은 투표라는 제도가 자리잡고 있으니 망정이지 옛날 같으면 시민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온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래도 친서민과 공정사회 화두는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지 않나.
“둘 다 큰 위기라는 게 진짜 문제다. 저축은행 사태를 봐라. 이게 공정사회냐. 검찰을 봐라. 법이 정권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고 힘없는 사람만 감옥 보내는 게 사법정의인가. 전세대란과 물가고에 서민경제는 무너지고 있지 않나. 구제역 파동 때 300만 마리를 땅에 묻는 게 정책이냐.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기는커녕 회전문 인사나 하고 있으니….”

-소통 문제도 많이 거론된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이기려 하지 말고 져야 한다. 국민은 대통령이 지는 걸 보고 싶어한다. 그럴 때 국민은 감동한다. 그런데 여론에 밀리면 패배하는 걸로, 대통령 권위가 손상되는 걸로 생각한다. ‘나는 정치는 안 한다’고 하는데, 비판하는 사람들 얘기도 경청하고 야당 대표도 만나는 게 진정한 소통이고 정치 아니냐.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실무적 판단만 있지 정무적 판단이 없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주위 사람들이 요즘은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하겠다더라. 혹시 보복당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남북 분단과 군사독재 속에서도 그 짧은 시기에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이뤘기 때문에 세계가 우리를 인정하는 것 아니냐.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무형 자산인데 이게 망가지면서 국격이 손해를 보고 있다. 경제만 G20 하면 뭐하나. 인권위원장을 왜 못 바꾸나. 그게 고집인 거다. 오죽하면 비 오는 날 출퇴근 길에 투표하러 가겠나.”

-해법이 뭐라고 보나.
“이명박 대통령이 살 길은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거다. 한나라당도 조만간 탈당을 요구할지 모르고, 청와대에서도 한창 전성기 때 재미 보던 사람들이 슬슬 눈치 보면서 좋은 자리로 다 옮겨갈 거다. 나에게 레임덕은 없다는 말은 ‘나는 절대 늙지 않는다’는 말과 똑같다. 여름이 ‘절대 가을은 없다’고 강변해봤자 계절의 변화는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이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국민뿐이다. 보다 겸손하게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박근혜, 이젠 당 개혁에 앞장설 때
-최근 한나라당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한나라당이 망하는 건 괜찮은데 그러면 보수 세력이 함께 망한다는 게 문제다. 나는 북한 급변사태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보수 세력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여당이 든든한 기둥으로 서있어야 나라가 유지되는데 당 지도부가 매일 회의하는 걸 보면 가려운 데는 놔두고 엉뚱한 곳만 긁고 있다. 따로국밥에 봉숭아학당이 따로 없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뭐라고 보나.
“이름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 두 가지 길이 있다. 40대 지도부로 확 바꾸거나, 외부인사를 대폭 수혈하거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과감한 외부 수혈로 위기를 돌파했다. 비대위가 국민적 공감을 얻으려면 외부인사를 절반 이상 임명해야 한다. 지금 한나라당엔 국민과 함께 뒹굴고 호흡했던 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니 공중에 붕 떠 있다. 한나라당의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도 반성문 하나 내고 끝냈는데 이번에도 깜짝 반성만 해서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거다.”

-‘박근혜 구원투수론’에 대해서는.
“재·보선을 전후한 조용한 선거지원 전략이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이 안 되지 싶었다. 앞으로도 그 기조를 유지해선 곤란하다. 지금 당을 추슬러야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있다. 당 개혁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년 대선에 한나라당 간판으로 나서려면 싫든 좋든 이젠 나서야 할 시점이다.”

쓴소리 계속하는 건 애정 있기 때문
-현 정부 들어 종교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역대 대통령 후보들이 어느 정도 종교를 이용한 측면이 있지만 이 대통령은 조금 지나쳤다. 대선 캠페인도 교회 간증으로 시작하지 않았나. 지금 그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거다. 조찬기도회도 없앴으면 좋겠다. 기도를 꼭 그렇게 해야 하나. 골방에 들어가서 간절히 기도하는 게 진짜 기도다.”

-교회 세습과 사유화 논란이 뜨겁다.
“얼마 전 독일 교회에서 설교를 했는데, 루터가 살아서 한국에 오면 두 번 깜짝 놀랄 거라고 했다. 130년밖에 안 된 기독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비롯해 당신 믿음의 후예가 이렇게 많다는 데 놀라고, 종교개혁의 이유였던 당시 로마 교회의 모습이 지금 한국 교회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데 또 놀랄 것이다. 기독교 혁신운동이 절실한 때다. 그래도 나는 교회의 자정 능력을 믿는다. 온갖 구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도 모두 정화되는 것처럼.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쓴소리 하면서도 한나라당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않는 까닭은.
“한나라당에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소금 같은 역할 말이다. 쓴소리 할수록 개인적으론 손해겠지만 그걸 감수하면서도 악역을 자처하는 이유는 한나라당이 진정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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