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의 금요일 새벽 4시] “한국 시장은 작으니 영어로 쓰시죠” “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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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하늘만 잔뜩 찌푸렸던 날, 모처럼 팀원들이 점심 약속들이 없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김치찌개가 끓길 기다리면서 이번 주 ‘커버스토리’를 장식한 마이클 코널리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정말 재미있나 보더라. 집에 한 권 가져갔더니 와이프가 새벽 4시까지 잠을 안 자.” “그럼요. 딴짓 좋아하는 클린턴도 광팬이라는데….” 그러다 결국 돈 얘기로 흘렀습니다. “그런데 책을 4500만 권 팔았다면 얼마나 번 거야?” “책값을 1만원 잡고, 10%만 인세로 받아도 450억원이네.” “그건 임자 같은 무지렁이 수준이고. 유명 작가니까 인세를 30% 이상 받았을걸. 최소한 1000억원은 벌었겠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근데 우리는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때 눈치 없는 후배가 유머인지, 진심인지 모를 얘기를 툭 던집니다. “에디터도 ‘세상사 편력’ 같은 거 말고, 돈 되는 소설 한번 써보세요.” 희망이 가득한 얼굴로 에디터가 대답합니다. “정말 그럴까? 나도 잘 쓸 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후배는 계속 눈치 없는 짓을 합니다. “그런데 한국시장은 너무 작으니까, 영어로 쓰세요. 그래야 돈을 벌지.” “야, 밥 먹자.” 김치찌개 국물을 뜨며 에디터는 이상하게도 과묵해졌습니다.

<김준술>

◆저는 털보입니다. 얼굴의 아래쪽 반쯤을 2~4㎜ 길이의 짧은 수염이 덮고 있지요. 아내는 불편하다며(?) 10년째 바가지를 긁어도 아이들은 수염으로 가려운 곳을 긁으며 즐거워합니다. 수염을 기르는 이유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가 되고 싶거나, 일탈을 꿈꾸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하면 에디터가 사정없이 자를 테고, 매일 아침 면도할 만큼 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긴 그런 건 있습니다. 사진기자가 단정한 하이칼라 머리에 양복을 잘 차려입고 가면 취재원들이 그다지 신뢰하지 않거든요. 수염을 기르든, 꽁지머리를 하든 뭔가 달라야 내공이 좀 있어 보이는 거죠. 그래야 취재 요구에도 쉽게 응하고요. 아무튼 ‘신촌 자취생’으로 알려졌던 스웨덴 가수 라세 린드가 무척 반가웠습니다. 비슷한 길이의 수염 때문이지요. 그도 제가 반가웠나 봅니다. 촬영이 끝난 뒤 수염 기른 사진기자는 처음이라고 말하더군요. 파리의 아가씨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라고도 했습니다. 침까지 튀어 가며 자랑하는 말을 듣던 파리 특파원 출신에 수염(혹은 용기) 없는 에디터가 한마디 합니다. “파리 아가씨? 글쎄 지지리 궁상 자취생들을 좋아할까?”

<박종근>

◆소설가 이문열 선생과의 인터뷰 당일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 “저녁은 집에 와서 먹어요. 김치 넣고 등갈비찜 해줄 테니….” 봄비가 아내의 마음에도 내렸나 봅니다. 객원기자 이혜영씨와 경기도 이천의 이문열 선생 댁에서 인터뷰를 오후 4시30분쯤 마쳤습니다. “소주 한잔, 오케이?”라는 에디터의 협박성 제안도 단호하게 뿌리쳤습니다. 그런데… “이천 쌀밥이 유명하다는데 저녁 같이해요. 새벽까지 드라마 찍고서 내가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었네요.” 이혜영씨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이천 쌀밥은 그날따라 왜 그렇게 푸짐하고 맛나던지요. 누룽지까지 싹싹 긁어먹었습니다. 집에 오니 아내가 웃는 얼굴로 등갈비찜을 내옵니다. 식사하는 제 모습이 영 마뜩잖았나 봅니다. “왜, 맛없어요?” 아침과는 표정이 사뭇 다릅니다. “사실은 말야…” 다급해진 저는 에디터의 유혹을 뿌리친 걸 무용담처럼 늘어놨습니다. “아니, 왜? 폭탄주도 먹고 내일 아침쯤 들어오지!” 제가 괜히 말했습니다.

<성시윤>

j 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신문 ‘제이’ 47호

에디터 : 이훈범 취재 : 김준술 · 성시윤 · 김선하 · 박현영 기자
사진 : 박종근 차장 편집·디자인 : 이세영 · 김호준 기자 ,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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