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14> 드라이버 성능 테스트, 그 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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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티잉 그라운드에서 가상의 선을 살짝 넘어 티펙을 꽂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흔히 ‘배꼽 나왔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뚱뚱한 사람이라도 배를 내밀어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기껏해야 20~30㎝ 정도다. 기자도 100m 달리기 선수가 출발선에 바짝 달라붙듯 가능한 한 앞에서 티샷을 하려다 의도하지 않게 선을 넘어간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를 반성하고 선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티를 꽂기 시작한 것은 동반자들이 “선을 넘어갔으니 2벌타다” “안 넘어갔다” 하면서 티격태격하는 싸움을 목격하고 나서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월경(越境)이 의도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린에서는 다른 문제다. 홀에 매우 가까워지면 공을 홀 쪽으로 조금이라도 옮겨놓고 싶은 충동이 매우 강렬해진다. 공자님 말씀 같은 얘기를 쓰고 있는 기자도 매우 중요한 퍼트일 때는 아직도 조금이라도 홀 쪽에 가까이 두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동반자들의 인품을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린에서 유혹은 매우 자극적이며 적발될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에 심리학자처럼 사람들의 행태가 어떤지 관찰하기도 한다. 마크를 공 뒤가 아니라 홀 쪽에 놓았다가 다시 공을 놓을 때는 볼을 홀 쪽으로 놓는 사람, 마크를 볼 깊숙이 찔러 넣고 다시 공을 놓을 때 멀찍이 홀 쪽으로 볼을 다시 놓는 사람,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마크를 대충(그러나 반드시 홀에 가까운 쪽으로) 던져 놓고 그 앞에 볼을 놓는 사람 등 유형은 다양하다. 그래 봐야 그린에서 전진하는 거리는 미세하다. 찔끔찔끔, 그러나 필사적으로 그린에서 홀 쪽으로 다가서는 골퍼를 골프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는 자벌레(inchworm)라고 한다.

중앙일보 골프&에서 드라이버의 성능 테스트를 했다. <중앙일보 4월 22일자 e22면·사진> 국내 언론사상 처음으로 드라이브샷 거리를 측정한 의미있는 시도라고 자부한다. 성적이 나쁘게 나온 업체들은 “아마추어 골퍼는 볼을 스위트 스폿이 아니라 다른 곳에 맞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테스트도 해야 옳다” “우리 클럽을 테스트할 때 유달리 맞바람이 강했다” “젊은 사람들의 헤드 스피드에 맞춰 테스트했기 때문에 시니어용인 우리 클럽을 테스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등을 반론을 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클럽 스펙과 기후 정보 등을 모두 표기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거라고 믿는다.

테스트 중 가장 놀라운 결과는 공인 드라이버와 비공인 드라이버의 거리 차이다. 평균 거리 차는 2.9야드에 불과했다. “놀라운” “압도적인” “이전에 없었던” 등등 화려한 미사여구가 수없이 들어갔지만 결국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은 두세 발짝에 불과했다. 샷거리의 1% 정도다. 스위트 스폿에 맞히지 못하는 일반인이 치면 거리 차이는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비공인 드라이버를 만들지 않는 이른바 메이저 업체들이 이 분야에 많은 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비공인 드라이버는 전반적으로 매우 비싸고 이른바 ‘명품’으로 광고한다. 비공인 클럽은 불법이라는 말인데 그걸 명품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인데 대충 아무 거나 쓰면 어때?”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다. 혹시 다른 스포츠라면 별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다른 스포츠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골프는 아니다.

골프의 정신을 만든 사람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첫 브리티시오픈 챔피언십이 열릴 때 선수가 스코어를 제대로 기입하는지 속이는지를 감시하는 사람은 프로에게만 따라붙었다. 돈벌이로 골프를 하는 프로는 룰을 잘 안 지키는 일이 빈번했는데 신사들인 아마추어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있는 그대로 친다라는 골프의 교훈을 확립한 사람도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다.

프로의 뛰어난 기술과 아마추어의 고결한 정신이 골프라는 스포츠를 만들었다. 기자도 수많은 유혹에 시달렸지만 배에 힘을 주고(배꼽을 내밀지 말고) 척추 각도를 유지하고 쳐야 장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골프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교훈을 주는 스포츠다.

성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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