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개인자금 4000억 중 1000억원 대 선물 투자했다 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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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51·사진) SK그룹 회장이 선물 거래를 했다가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정부와 SK그룹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해 말부터 SK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는 도중에 최 회장이 1000억원대 선물 투자를 했다가 원금 전액에 가까운 손실을 본 것을 파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금융 당국으로부터 그런 동향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 현재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SK 세무조사를 하면서 정기 세무조사를 하는 서울청 조사1국뿐 아니라 특별·기획조사를 담당해 ‘국세청의 중수부’라 불리는 서울청 조사4국까지 투입했다. 최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들의 주식 변동 내역까지 뒤졌다. 업계에서는 “정권 말기에 레임덕이 오는 것을 막으려고 대기업을 옥죄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국세청 등은 “정기 세무조사를 보다 철저히 하는 것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국세청은 최 회장이 손실을 본 돈이 불법 자금은 아니라고 결론 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도 “(최태원 회장이) 세금을 제대로 납부했는지 확인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미 개인 자금이라는 것을 확인했음을 내비친 것이다.

 SK그룹 측은 최 회장 개인 자금으로 투자한 것이어서 언제, 왜 투자를 했는지 상세한 내용은 그룹에서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손실을 본 자금이 회사 돈이나 비자금일 가능성은 일축했다. 최 회장이 최근 몇 년간 4000억원가량 개인 자금을 마련해 놓은 상황이어서 1000억원대의 개인 투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최 회장은 2007년 8월 SK케미칼 주식 978억원어치(121만 주)를, 2009년 2월에는 920억원 상당의 SK㈜ 주식(103만 주)을 팔았다. 지난해 9월에는 보유 중인 SK C&C 지분 44.5%(2225만 주) 가운데 8%를 담보로 2000억원의 개인 대출을 받았다. 2008년 SK건설 주식 200억원어치를 판 적도 있다. 모두 합하면 4000억원이 넘는다. 웬만큼을 썼더라도 1000억원대 개인 투자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 연봉과 배당금 수입도 있다. 최태원 회장은 보유 주식의 2010년도 결산 배당으로 156억원을 받았다.

 왜 선물 투자를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선물 투자는 예상이 잘 들어맞으면 같은 금액을 주식에 넣었을 때보다 몇 배 이익을 안겨주지만, 손실 위험도 그만큼 크다. 그럼에도 선물 투자를 한 것은 그만큼 빨리 자금을 불려야 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지주회사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 순환출자 해소 자금을 마련하려던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최 회장이 지난해 9월 2000억원을 대출할 당시 SK그룹은 SK C&C→SK㈜→SK텔레콤→SK C&C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였다.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려면 SK텔레콤이 가진 SK C&C 지분 9%(450만 주)를 처분해야 했다.

 최 회장은 이 지분을 시장이나 제3자에 팔기보다 직접 사들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직접 사면 그룹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SK C&C 주가가 가파르게 치솟은 게 문제였다. 지난해 초 5만원 안팎이던 주가는 9월 9만원까지 올랐다. 지분 9%를 인수하려면 4000억원 넘는 돈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게다가 시간을 끌수록 주가가 올라 지분 확보에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할 것이라는 예상이 높아졌다. 그래서 최 회장은 개인 돈을 단기에 불리는 선물 투자를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SK그룹은 최근 들어 SK텔레콤이 가진 SK C&C 지분을 우호 세력인 쿠웨이트 투자자와 KB금융지주 등에 분할 매각해 현재는 순환출자 구조를 없앤 상태다. 따라서 최 회장의 선물투자 시기는 이보다 앞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고정애·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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