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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에 봉황 새겨진 청첩장은 ‘신식’ … 청첩장 돌리면 벌금 50만원 이었던 그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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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핸즈 박영춘 회장


6월에 결혼하는 이정인(33)씨. 그는 청첩장 제작을 위해 한 스튜디오를 찾았다. 웨딩 촬영 장면과 연애 때 찍은 사진을 모아 동영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씨는 동영상을 친구들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할 계획이다. 양가 부모님이 친척과 지인에 보낼 종이 청첩장은 최소량으로 인쇄해뒀다.

청첩장의 계절이 왔다. 지금은 개성있는 방법이 총동원되지만 과거에도 그랬을까. 40년 동안 각종 카드를 만들어온 비핸즈(구 바른손카드) 박영춘 회장의 인터뷰와 옛 사료를 통해 청첩장의 변천사를 살펴봤다.

◇청첩장은 세금 고지서 취급=먹고 살기 힘들었던 1940~50년대. 이 때의 청첩장은 아무런 무늬 없는 한지에 혼주와 신랑ㆍ신부 이름, 일시, 장소를 적어 봉투에 넣는게 전부였다. 조금 신식일 경우 봉황이 그려진 백지를 구입해 혼례를 알리고 겉봉투에 ‘請牒(청첩)’이라고 쓰는게 고작이었다. 전후인 50년대 말부터 서울 충무로 인근의 인쇄소가 부흥기를 맞으면서 인쇄 청첩장 시대가 시작됐다. 물론 백지에 내용만 적어 찍어내는 것이었다. 60년대엔 청첩장이 세금 고지서로 통할 정도로 대중화됐다. 가문을 과시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주례와 사회는 누가 보는지, 청첩인은 누구인지 나열해서 돌렸다. 중앙일보 66년 10월 27일자에는 “어떤 청첩장 뒷면엔 20여 명의 이름이 죽 적혀 있다. 신랑ㆍ신부 본인과 부모, 사회의 명망가 주례 등등. 배경과 세도의 진열장이라도 되는 듯 화려한 인명록을 펴고 있다”는 독자 투고가 실릴 정도였다.

◇청첩장 돌리면 벌금 50만원=1969년 정부가 가정의례준칙을 마련했다. 청첩장 금지령이다. 준칙이었기 때문에 강제성은 없었다. 그러다 74년 6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지키지 않으면 5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했다. 당시 50만원이면 10년차 직장인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법률 시행 후 직장동료의 결혼을 알리는 방법으로 회사내 스피커 방송이 이용됐다. 아예 하루 휴가를 내 종일 전화를 붙잡고 결혼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인쇄 청첩장은 점점 사라졌지만 편법으로 제작된 청첩장은 급증했다. 창호지에 손으로 일일이 쓰는 편지식, 먹지를 5∼6장 받쳐 쓰는 먹지식, 타이핑을 치고 수십장씩 뽑아내는 복사식 등이다. 80년 보건사회부는 인쇄물뿐 아니라 편법 청첩장도 돌릴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이미 사문화된 법이었다. 어떻게 일일이 확인할텐가.

옛 시대를 거쳐온 청첩장이다. 좌로부터 1948년, 1962년(이하 시흥시청 제공), 1978년, 1991년, 2000년, 2010년(이하 비핸즈 제공) 청첩장. 1948년 청첩장 문구 내용이다. ‘삼가 아룁니다…두 사람의 결혼식을 4월24일(음력 3월13일) 정오 서울 남산예배당에서 거행하오니 만사 제치고 꼭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4월 26일 정오 신랑자택을 방문하여주심을 간곡히 바랍니다.’

◇일부 꼴불견도=94년 청첩장 발송이 21년 만에 공식 허용됐지만 이미 80년대 초부터 디자인 청첩장이 발행되기 시작됐다. 당시 B사는 디자이너를 고용해 무늬를 넣은 카드 형태로 대량의 청첩장을 제작했다. 반짝이는 펄지, 입체적으로 도드라진 문양,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인형, 원앙, 비둘기, 장미 무늬가 프린트됐다. 사회와 주례 명단이 사라졌다. 대신 ‘저희 두 사람이 이제 믿음과 사랑으로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는 등의 문구가 들어갔다. 캐리커처ㆍ만화ㆍ컴퓨터 그래픽 합성까지 총동원됐다. 본인의 목소리를 녹음한 내용을 전화로 알리는 콜통신도 등장했고 결혼을 알리는 내용이 담긴 인터넷 홈페이지가 개설되기도 했다. 90년대 웨딩컨설턴트 시대가 막을 올리며 예비부부 사진을 인쇄한 카드가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문구도 신세대 다웠다. ‘둘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겠다나 뭐라나. 일단 한번 와보라니깐’ ‘시작도 안했는데 왜들 난리지?’라는 식이다. 눈살을 찌푸리는 일도 더러 있었다. 계좌번호가 적혀 있는 청첩장, 얼굴이나 성(姓) 정도만 안다고 ‘김사장님 귀하’라고 오는 경우가 있었다.

◇디지털 청첩장 시대=2000년대부턴 종이 청첩장을 소량 주문해 웃어른에게 보내고 친구나 직장동료에겐 미니홈피나 블로그 형태의 청첩장을 제작해 e메일로 보내게 됐다. 삽입하는 문구나 사진들도 과감해졌다. ‘결혼은 전쟁의 시작, 전쟁터로 오세요’라는 글귀에 신랑ㆍ신부가 비키니수영복을 입고 해변에서 뛰어노는 사진을 넣기도 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휴대폰을 이용한 모바일 청첩장도 등장했다. 언제 어디서든 결혼 정보를 알 수 있게 문자로 남겨놓는 것이다. 지갑 속에 넣을 수 있게 한 명함크기의 미니청첩장도 인기를 끌었다. 최근엔 휴대폰으로 결혼 소식을 알리는 동영상을 전하거나 이를 담은 사이트 주소를 연결하고 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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