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95) 간화선과 위파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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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국내 선방의 수좌들 사이에서도 ‘빅 뉴스’라고 합니다. 십여 일 전 충남 공주 태화산에서 열렸던 ‘간화선(看話禪)과 위파사나의 만남’ 말입니다. 그 동안 간화선은 남방 불교의 위파사나 수행을 “개인의 수행에만 치중하는 소승 불교”라고 폄하했고, 위파사나는 북방 불교에 대해 “붓다의 직설이 아니다”며 무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사실 국내 스님들도 적잖이 미얀마에 가서 위파사나 수행을 배웁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선 “나는 위파사나 수행을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합니다. 일종의 ‘커밍 아웃’이 필요하니까요. 자칫하면 “외도(外道)에 빠졌다”는 십자포화를 받기 십상입니다. 최근 어떤 스님은 “안거 때 스님들이 선방에 앉아서 화두를 드는 건지, 호흡 수행(위파사나)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만큼 국내에서 위파사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 만남은 ‘한 번은 꼭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미얀마에서 파욱 스님을 모르면 ‘간첩’입니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스리랑카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유명한 선사(禪師)입니다. 그날 토론장을 찾은 미얀마 젊은이는 “한국이니까 파욱 사야도(큰스승)를 가까이서 뵐 수가 있다. 미얀마에선 사람이 너무 몰려서 가까이서 뵙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하더군요.

 사실 파욱 스님은 간화선을 잘 모릅니다. ‘길 없는 길을 간다’는 간화선의 특성상 책이나 논리를 통해서 이해하긴 쉽지 않으니까요. 더구나 외국인에겐 말입니다. “만약 아끼는 제자가 간화선 수행을 하겠다면 어떡하겠느냐?”는 물음에 파욱 스님은 “아직 그런 제자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그저 담담하고 솔직한 대답일 뿐이었죠. 위파사나와 간화선을 비교해서 던진 답으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파욱 스님은 스스로 “나는 간화선을 잘 모른다”고 했으니까요.

 대신 파욱 스님은 77세의 나이에도 위파사나 수행이 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는 것인가를 아주 치밀하게 설명했습니다. 요지는 “눈에 보이는 물질과 정신에 사로잡히지 말고, 궁극적인 물질과 궁극적인 정신을 찾아라”였습니다. 위파사나의 호흡법은 그걸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고우(봉화 금봉암 주석) 스님은 조계종의 대표적 선사입니다. 사실 ‘간화선과 위파사나의 만남’이란 토론장에 나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열린 시선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고우 스님은 선뜻 간화선 대표로 대화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래 부처다. 그런데 ‘내가 있다’는 착각 때문에 부처로 살지 못하고 있다. 간화선 수행을 통해 그런 착각을 걷어낸다”고 말했습니다.

 간단합니다. 가령 미운 오리새끼가 있습니다. 그는 본래 백조입니다. 그러나 “나는 오리다. 오리가 실제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게 바로 착각이죠. 그럼 착각의 산물인 오리는 실제로 있는 걸까요? 맞습니다. 없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오리다”라는 착각도 본래 있는 걸까요, 없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본래 없는 겁니다. 그럼 실제 있는 건 뭘까요. 맞습니다. 백조만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백조다. 본래 부처다”만 남는 겁니다.

 진정한 수행이란 뭘까요. 그건 “오리가 있다”는 착각을 걷어내는 일입니다. 위파사나 수행은 호흡을 통해서, 간화선 수행은 화두(話頭)를 통해서 “나는 오리다”는 착각을 걷어냅니다. 그러니 호흡과 화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착각을 걷어내느냐, 걷어내지 못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수행을 통해 오리를 ‘착! 착!’ 걷어낼 때마다, 오리(착각)에 가려져 있던 백조의 이치가 ‘탁! 탁!’ 모습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런 이치가 우리의 삶을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는 겁니다.

 위파사나 수행은 오리의 눈·코·입·머리·날개·깃털·다리·물갈퀴·발톱까지 마디마디 분석해서 “오리가 없다”는 걸 확인해 갑니다. 반면 간화선은 “오리가 통째로 없다”는 걸 단박에 보려는 식입니다. 위파사나는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고, 간화선은 지나칠 정도로 간결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긴장감’을 안겨줍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정말로 행복해지는 거니까요.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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