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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 한 푼 허투루 쓰지 않지만 얘기되면 100억원도 안 아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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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3년간 매출 40배 증가. 세계 시장 점유율 95%. 코스닥 상장 7개월 만에 시가총액 두 배. 20일 창립 10주년을 맞는 정보기술(IT) 부품기업 크루셜텍의 안건준(46·사진) 대표가 만들어낸 기록이다. 안 대표는 IT 업계와 증권가에서 기술력 하나로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룬 대표적인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2001년 호서대 창업보육센터에서 자본금 1억원의 벤처기업으로 시작한 크루셜텍은 연 매출 2000억원, 시가총액 4800억원의 대형 코스닥 상장사로 성장했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옵티컬트랙패드(Optical Track Pad·OTP)’다. OTP는 휴대전화 화면에서 원하는 항목을 찍을 수 있는 입력기기로, 일종의 ‘휴대전화 마우스’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갤럭시·아이폰 등 ‘풀터치폰’은 손끝이 입력기기 역할을 하지만 블랙베리는 OTP로 화면을 움직인다.

OTP는 삼성전자·리서치인모션(RIM)·HTC 등 전 세계 20여 개 휴대전화 브랜드에 탑재되고 있다. 사명에 크루셜텍(Crucial Technology, 결정적인 기술)이란 뜻을 담은 안 대표의 자신감도 OTP에서 나온다.

14일 경기도 수원시 광교테크노밸리 내 크루셜텍 본사에서 안 대표를 만났다. 이날 마침 그는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올 1분기 매출 701억원, 영업이익 89억원)을 공시했다.

-창립 10주년의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향후 10년이 더 중요하다. 냄비처럼 확 달아올랐다가 꺼지는 전형적인 한국 벤처의 스토리를 바꾸고 싶다. 많이 버텨야 10년인 회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회사를 만들겠다.”

-지속 성장하기 위해 중점을 두는 것은.
“인재 확보다. 지금도 비생산직 직원 300명 중 200명이 연구인력이다. 올해 100명의 연구직을 더 뽑으려 한다. 글로벌 기업을 꿈꾸기 때문에 해외에서 유학한 실력파도 적극 영입할 것이다.”

-인재를 구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텐데.
“충분히 가치 있는 비용이다. 인재가 기술을 만들기 때문이다. 창업 초기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도 대부분 인력 확충에 썼다. 난 10원 한 푼 허투루 쓰지 않지만 필요한 인재, 얘기되는 사업에는 한번에 100억원도 쓸 수 있다.”

안 대표는 이 대목에서 스스로를 ‘짠돌이’라 표현했다. 집무실의 인테리어를 손으로 가리키며 전문업체에 맡기지 않고 직접 벽지와 장식을 골라 비용을 반값으로 줄였다고 자랑했다. 이번 창립행사를 경기도 수원의 한 고급호텔에서 여는 것에 대해서도 “정말 오랜만에 크게 한턱 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이 IT기업 CEO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196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는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꿨다. 하지만 부모님이 미대에 가는 것을 반대했고, 결국 부산대 기계공학과 84학번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늘날의 그가 있게 한 곳은 첫 직장인 삼성전자 중앙연구소였다. 안 대표는 “당시에도 관계사인 삼성자동차로 옮겨 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싶었는데 연구소에서 놔주질 않았다. 그때 삼성자동차로 갔더라면 오늘의 크루셜텍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잘나가던 엔지니어가 왜 삼성전자를 나왔나.
“90년에 입사해 광통신 기술과 초미세 광나노기술 등 광모듈을 연구했다. 입사 2년 만에 광모듈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잇따라 특허를 내 ‘특허쟁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좀 더 높은 자리에서 내 아이디어를 펼치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97년 때마침 럭스텍이라는 광모듈 관련 중소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와서 받아들였다.”

-임원이 됐는데, 벤처를 창업한 이유는
“사실 그때만 해도 창업은 생각하지 않았다. 32세에 럭스텍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다. 입사 2년여 만에 세계 최초로 ‘옵티컬 페룰’이라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그때 벤처 창업 붐이 일었다. 이럴 바엔 내 회사를 차리자는 욕심이 났다. 내 몸 속에 ‘벤처 DNA’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2001년 크루셜텍을 설립했다.”

-지금까지는 탄탄대로였다.
“그럴 리가 있나. 2002년 겨울 제품 수주액 1300억원이 모두 날아가는 믿기지 않는 상황을 경험했다. IT 거품이 꺼지면서 거래처가 하나 둘 가계약을 파기하더니 아예 연락이 끊겼다.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그때 정말 낙심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기대했던 수주액이 사라진 것이지 손실을 본 건 아니었다. 원천기술인 광모듈 기술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그리고 산고 끝에 2006년 OTP를 개발했다.”

-OTP가 본격적으로 상품화한 계기는.
“2007년 캐나다 통신기기 업체인 RIM의 휴대전화 블랙베리에 탑재되면서부터다. 당시 블랙베리엔 ‘트랙볼’이라는 입력기기가 있었다. RIM의 엔지니어들은 우리 기술이 훨씬 낫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마케팅과 영업 파트에선 ‘블랙베리=트랙볼’이라며 완강히 반대했다. 그래도 10개월간 끈질기게 설득해 성공했다. 결국 트랙볼 대신 OTP가 들어가면서 실적이 좋아졌다.”

-여러 번 질문을 받았겠지만 한번 더 묻겠다. 갤럭시·아이폰 같은 풀터치 스마트폰이 대세인 상황에서 OTP의 영역이 좁아지지 않을까.
“한국시장에 고가의 풀터치 스마트폰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OTP의 사용자 편리성은 풀터치를 능가한다. 세계시장엔 OTP가 들어간 스마트폰을 원하는 소비자가 많다. 저가의 일반 휴대전화에서도 OTP의 채택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작은 컴퓨터 역할을 하려면 OTP처럼 정밀한 입력기기의 필요성이 점점 증가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OTP와 터치를 하나의 칩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해 경쟁력을 높이겠다. 또 스마트TV 작동 리모컨의 매출이 늘 것으로 기대한다. 전자책, LCD 모니터, 디지털카메라 등 더 많은 전자기기에 OTP를 넣겠다.”
안 대표는 ‘리틀 삼성전자’가 되는 게 크루셜텍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굿컴퍼니’는 어느 한 사람이나 경기의 파고에 흔들리지 않고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굿컴퍼니의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그는 매년 40여 개의 특허를 출원한다. 경쟁기업의 유사 제품 출시에 회사가 흔들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인터뷰를 마치며 취미를 물었다. 그는 “주말에 등산도 하고 골프도 치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더니 이내 “솔직히 내 취미는 일이다. 새로운 제품을 상상하고 사람 만나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하루 18시간씩 일해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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