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반찬통으로 세계시장을 뚫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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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27면

중국 선양의 락앤락 1호점. 2004년 상하이 영업 법인을 설립해 중국에 진출한 락앤락은 중국에서 전체 매출의 약 40%를 올리고 있다. [락앤락 제공]

호치키스, 버버리 코트, 스카치 테이프…. 일반명사로 스테이플러, 트렌치코트, 셀로판 테이프라고 하는 것이 맞지만, 어떤 상표나 브랜드는 이처럼 제품의 대명사가 되기도 한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고안하거나,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 때 브랜드명은 고유명사로 대중에게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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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일 회장

락액락(Lock&Lock, 회장 김준일)도 비슷한 경우다. 국내 시장 59.7% 점유, 100여 개국 진출, 세계적 기업인 러버메이드·타파웨어의 뒤를 잇는 세계 3위. 화려한 실적을 자랑하는 락앤락은 밀폐용기의 대명사가 됐다. 10여 년 만에 매출의 65%를 해외에서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락앤락은 경영학 교과서처럼 정석대로 성공의 길을 밟았다.
 
Step1.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제품 뭘까
회사의 출발은 1978년 국진유통이라는 생활용품 수입업체였다. “물건을 만들어보지 않으면 사업을 했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김준일 회장은 1985년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욕실용품·휴지통 등 플라스틱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뭐든 다 만들었지만, 한계가 뚜렷했다. 다품종 생산으로 재고관리나 원가관리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90년대 중반 100억원대에 이른 연 매출도 더 이상 늘지 않고, 정체됐다. 더구나 저렴한 인건비로 급속하게 성장하는 중국을 상대할 재간이 없어 보였다.

‘선택과 집중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하나의 제품을 선택하기 위해 김 회장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세계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것, 1년 내내 사용 가능한 것, 국가나 문화적 차이에 영향받지 않는 것, 크기나 색깔이 어디서나 통용되는 것…. 600여 종의 제품 중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것을 하나씩 뺐다. 마지막에 남은 것이 반찬통이었다.
반찬통을 만드는 회사는 부지기수였다. 기존 제품을 뛰어넘기 위해 김 회장은 주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치 국물이 샌다” “냄새가 냉장고에 스민다”는 등 기존 제품에서 보완할 점을 찾았다. 100% 밀폐력을 갖춘다면 승산이 있었다. 뚜껑에 이중 실리콘을 사용하고, 날개를 달아 본체에 밀착하도록 했다. ‘두 번 잠근다’는 뜻의 ‘락앤락’이 98년 탄생했다. 밀폐력을 강조하면서 해외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쉬운 브랜드명이었다.
 
Step2. 소비자가 모를 땐 어떻게 알릴까
기대와 달리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반찬통이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은 100% 밀폐력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김 회장은 진가를 알아주는 시장을 찾아 나섰다. 2002년부터 홍콩·프랑크푸르트·시카고 등 세계 가정용품 박람회에 출품하면서 제품을 알렸다.
그러던 중 캐나다 바이어로부터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락앤락은 기존에 없던 제품이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교육을 시키면서 알려야 한다”며 ‘인포머셜 마케팅(Informercial Marketing)’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커머셜(Commercial)의 합성어로, 제품에 대한 정보를 알리면서 판매하는 새로운 개념이었다.

때마침 홈쇼핑이 새로운 유통채널로 각광받고 있었다. 락앤락은 미국 최대 홈쇼핑 채널인 QVC에 데뷔했다. 용기 안에 카메라를 넣고 수조에 담그거나, 케첩을 넣어 위아래로 흔드는 등 눈앞에서 밀폐력을 생생하게 시연했다. 방송 첫날 5000세트가 매진됐다. 해외 시장 성공은 국내 시장의 러브콜로 이어졌다. 2001년 국내 홈쇼핑에 처음 등장했고 2003년 매출 1138억원까지 뛰어올랐다.

화려한 성공이지만 김 회장은 불안했다고 한다. 락앤락이 조사한 한국 밀폐용기 시장의 규모는 800억원대. 이를 뛰어넘는 매출은 내년, 내후년의 매출을 미리 올렸다는 뜻이었다. 김 회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한 가정에서 보유한 밀폐용기가 평균 40개, 100개 이상 보유한 집도 3%가 넘었다. 매출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Step3. 국내는 포화…새로운 시장은
락앤락은 진작 해외 시장을 염두에 뒀고, 일부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총판과 판로를 갖고 있었을 뿐 직접 판매는 하지 않았다. 전략적 시장 확대를 위해 락앤락은 직접 진출을 준비했다. 중국이 첫 번째 기지였다. 소비대국이면서 생산 기지로서의 가치, 한류 열풍 등 유리한 조건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고급화 전략을 채택해 일부러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중국으로 들여가 판매했다. 상하이 명품거리에 직영점을 열었다. 2008년 중국시장에서 매출 1억 달러를 넘었다. 중국시장은 락앤락 전체 매출의 40% 가까이 차지한다.

중국에서의 성공은 태국·베트남·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로 이어졌다.
한 우물을 열심히 파서 성공했지만, 성공 요인이 약점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밀폐용기의 대명사라는 건 락앤락이 “밀폐용기만 만드는 기업”이라는 선을 그은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락앤락은 용기의 용도와 소재를 다양화하고 주방·생활용품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락앤락=밀폐용기’라는 인식이 너무 강해 개별 브랜드를 내세우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냉장보관용 전문용기는 프리저락(Freezer Lock), 냉장·냉동 동시사용 가능한 듀얼락(Dual Lock)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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