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시험에 떨어졌다 다섯 가지를 감사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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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31면

아들이 시험에 떨어졌다. 그것도 1점 차로. 회계사 시험 마지막 과목이었다. 아쉬웠다. 채점관이 원망스러웠고 비켜간 합격이 안타까웠다. 녀석은 녀석대로 얼마나 실망이 컸을까. 녀석은 내게 직접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엄마를 통해 이야기했다.

삶과 믿음

이런 날은 밤이 두렵다. 온갖 걱정과 근심에 얼른 잠이 오지 않는다. ‘어제의 비로 오늘의 바지를 적실 필요가 없고, 내일의 비를 위해 오늘 우산을 펴들지 말라’는 말을 모르지 않으면서 나도 모르게 ‘우산’을 펴든다. 그렇게 해서 원망과 분노와 한숨으로 잠든다. 밤은 지옥이 되고 만다.

작가 김홍신씨도 그랬나 보다. “속상한 일이 생겨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애써 잊어보려고 술도 마셨고 수면제도 먹었지만 원망을 가셔낼 수는 없었습니다. 내 속을 뒤흔든 사람은 지금쯤 쿨쿨 자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순간 나만 손해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상해서 마신 술은 간을 괴롭힐 것이고, 잠들기 위해 삼킨 수면제도 내 몸의 어딘가를 갉아먹을 것이며, 밤새 미워하고 원망한 내 영혼은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리라. 아∼, 밤새 내 영혼에 쓰레기를 퍼 담았으니 내게서 악취가 진동할 테고 마음마저 병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아내와 함께 소화전(消火栓)을 꺼내 들었다. 마음의 불을 꺼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 우리네 마음은 화택(火宅)으로 변하고 말 터이니.

불을 끄는 건 ‘감사’였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사는 길이었다. 성경은 말한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로새서 3:15). 그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1. 아들 녀석이 인생에 1점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가장 싫어했던, 그래서 통과의례로만 여겼을 과목을 다시 공부하게 되어 기초실력을 탄탄히 쌓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실패를 모르던 녀석이 처절한 실패를 통해 겸손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 무엇보다 실패에 맞짱 뜰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 낙심한 아들에게 위로와 격려로 가족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로소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다음 날이었다. 전화를 걸었다. 아들에게 말했다. “찬아, 아빠가 대학부 때 학생회장 투표 나섰었다. 그때 내 이름 내가 썼으면 됐는데… 괜히 친구 이름 써 주는 바람에 한 표 차로 떨어져서 그날 이후로 투표란 투표는 무조건 아빠 이름부터 써놓고 본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아빠가 학생신앙운동 전국 위원장까지 하지 않았겠니.”
“아∼ 예.”

“찬아, 아빠 이야기 잘 새겨 듣거라. 어떤 사람이 밤마다 달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단다. 사람들이 그랬어. 미친 짓이라고. 무모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활시위 당기는 것을 놓치지 않았단다. 그렇게 해서 달, 끝∼내 못 맞혔다. 찬아, 사람들이 안 되는 일을 놓고 ‘하늘의 별 따기’라 하지 않니. 너나 나나 오늘부터 하늘의 별 따기를 시작해 보면 어떻겠니. 너나 나, 하늘의 별, 절대 못 딸 걸. 하지만 언젠가 너와 내가 하늘의 별이 되어 있을지 어떻게 아니.”

감사는 아들의 합격 소식이 아니었다. 가족의 의미였다. 아들이 써내려갈 ‘별’ 이야기가 궁금하기만 하다.
잠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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