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주민과 일일이 악수 … 조용필의 손은 따뜻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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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열린 한센인을 위한 콘서트에서 가수 조용필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조씨는 이날 즉석에서 한센인들의 신청곡을 받아 들려주기도 했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왕(歌王)’은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가수 조용필(61)씨가 15일 오후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지난해 5월 어린이날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쳤던 소록도 공연 당시 “꼭 다시 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

 이날 공연은 소록도 우촌 복지관에서 1시간 남짓 펼쳐졌다.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인 등 300여 명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귀에 익은 흥겨운 멜로디가 들려오자 객석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단발머리’로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따라 불렀다.

 “제가 지난해에 처음 왔는데 두 곡밖에 부르지 못해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여러분들과 약속했습니다. 다시 오겠다고.”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한 한센인 관객이 불쑥 무대 앞으로 나와 조씨의 손을 덥석 잡으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용필은 “전혀 고생 안 했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라며 한센인의 눈을 일일이 맞추며 문득 이렇게 제안했다.

 “이번 공연은 여러분의 신청곡도 많이 받아서 불러드리려고 합니다. 박수도 치시고 춤도 추시고 마음껏 즐기세요.”

 그러자 객석에서 ‘허공’ ‘돌아와요 부산항에’ ‘한오백년’ 등 신청곡이 쏟아졌다. 조씨는 자신의 전속 밴드 ‘위대한 탄생’과 즉석에서 호흡을 맞추며 신청곡을 일일이 들려줬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던 조씨가 손짓을 하며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슬금슬금 무대 위로 올라온 한센인들은 조씨와 어울려 어깨를 들썩였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조씨와 한센인들의 목소리가 하나인 듯 녹아들었다. 공연은 ‘친구여’를 부르던 조씨가 객석으로 직접 내려가면서 절정에 달했다. 그는 노래를 부르며 한센인의 손을 일일이 맞잡았다.

 46년째 소록도에 살고 있는 이남철(62)씨는 “헛된 약속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조용필씨는 다시 온다고 한 약속을 그대로 지켜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사실 이번 소록도 공연은 외부엔 철저히 비밀로 했다. “행사 취지가 왜곡될 수 있다”는 조씨의 우려 때문이다. 실제 소록도 주민들조차 이날 오전에야 조씨의 공연 소식을 접했다.

 ‘여행을 떠나요’로 달아오른 공연은 마지막 곡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가 시작되자 문득 숙연해졌다.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내 마음 머물게 해주오…’. 무대를 마무리하는 가왕도, 그를 보내야 하는 한센인도 아쉬움에 젖어들었다. 조씨는 “내년에 다시 뵙겠다”고 또 한번 굳게 약속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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