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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지 않음의 매력…KBS〈해뜨고 달뜨고〉의 지혁

중앙일보

입력

KBS 일일연속극 〈해뜨고 달뜨고〉에서 가장 개성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남자 주인공 '지혁'(이창훈)이다. 지혁의 독특한 성격은 다른 남자 등장인물들과 대조를 이루면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성격을 대조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초반에는 지혁이 다니던 회사의 합병을 둘러싸고 지혁과 그의 동생 지훈(류진)이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였다. 최근에는 지혁의 아버지 최 부장(김세윤)과 영주의 아버지 박 부장(명계남)의 대립과 갈등이 두드러진다.

최 부장과 지훈, 그리고 지혁과 박 부장은 서로 닮은 꼴이다. 최 부장과 지훈에게는 가정보다 일이 더 중요하고 일을 할 때에는 생산성과 효율 만을 강조하면서 힘의 논리를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반면 박 부장은 정직함과 원칙, 인간적인 신뢰를 중요시하는 스타일로 업무 실적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동료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다. 지혁은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인수한 외국 기업에서 더 많은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창의력과 성실함으로 자기 일을 해 나간다. 지훈이나 최 부장은 그런 지혁이 남자답지 못하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못마땅해 한다.

이쯤 되면 서로 구분되는 이 두 유형이 어떤 점에서 대비되고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한 쪽은 어느 정도 속물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출세 지향의 인간형이고 다른 한 쪽은 좀더 인간적인 가치를 실현해 보려는 이상주의자라 할 수 있겠다. 한 쪽은 기존의 지배 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승리자의 길로 나아가고 있고 다른 한 쪽은 그것을 변화시키려 하거나 그 비도덕적인 질서 안에 포섭되지 않으려 한다.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대립은 별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 드라마에서 재미있고 새로운 것은 그 현실적응파 또는 출세지향형 남자들이 모두 가부장적인 태도와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훈과 최 부장은 "미성숙한 인격에게나 어울리는 남녀차별"의 발언을 심심찮게 해대고 있고 최 부장은 아내와 아이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 반대로 박 부장은 아이들을 위해 저녁을 직접 준비하기도 하는 자상한 아버지로 그려진다. 지혁이 영주(유호정)을 사랑하는 방식을 보아도 지혁은 남녀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게임 규칙은 문제 삼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승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지훈과 최 부장이 가부장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작위적인 설정이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지혁을 남자답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데서도 드러나듯이 그들 출세지향형에게 중요한 목표는 남자다움의 극대화이다.

현재의 남자다움, 여자다움은 산업화와 함께 직장과 가정, 일과 사랑이 분리되면서 각 영역에 적합한 특성을 남자, 여자에게 할당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 남자다움이란 집 밖의 일을 잘 할 수 있는 특성과 능력을 말하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냉혹한 경쟁 사회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자가 되는 것이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그와 같은 남자다움을 자기 정체성의 주요한 부분으로 삼는 사람은 집안에서도 여자들이 남자를 받들고 집안일에만 전념하기를 요구하는 가부장으로 군림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대체로 대단한 야심을 가지고 사회적 성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남자가 매력적인 남자로 그려져 왔던 데 비해 이 드라마의 지혁은 그와 대조되는 인간상을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부드러운 남자'가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것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지혁이나 그에 대조되는 인물들은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현실적이다. 집에서는 애정 표현을 달콤하게 하는 자상한 남편이면서도 직장에서는 수완을 발휘하며 출세 가도를 달리는 남자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혁이 보여 주어 온 새로운 사랑의 방식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도 기대가 크지만 비도덕적인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면서 소신 있게 사는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도 주목해서 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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