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금리 올려선 인플레 못 잡아…‘양적 긴축’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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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새로운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

 프레드릭 뉴먼(사진)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말이다. 그는 세계 언론과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스타 이코노미스트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 경제가 그의 핵심 분석 대상이다. 최근 그가 콘퍼런스콜 방식으로 아시아 지역 매체들과 인터뷰했다. 신흥국 16개 나라의 경제활동을 모은 ‘이머징마켓지수’ 개발을 기념해서다. 한국에선 중앙일보만 초대됐다.

 -한국 등 동아시아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인가.

 “급등하는 기름값이다. 한국과 중국·일본 등은 원유를 수출하는 나라가 아니다. 거의 전량 수입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을 달성하는 데 아주 많은 석유를 소비하는 나라이지 않은가.”

 -국제 원유값 상승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머징마켓 올 1분기 경제 활동이 지난해만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름값이 너무 오른 게 주요 요인이다. 올 2분기에도 신흥국들의 경제 활동 둔화가 이어질 듯하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을 더 걱정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 등의 물가 압력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올 2분기에도 압력은 계속 올라갈 듯하다. 아직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며 씀씀이를 줄이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정책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정책 부담이란 무슨 말인가.

 “정부와 중앙은행이 재정과 통화정책 수단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면 선택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의 가짓수가 줄어들 수 있다. 현재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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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을까.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돈을 계속 찍어내 뿜어내고 있는 모습이다. 일부가 금리를 올리거나 인상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 돈이 많다. 미국과 유럽의 금리 수준은 역사적인 기준에서 아주 낮다. 이런 때 한국 등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어떻게 될까.”

 -좀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이머징 마켓으로 돈이 밀려들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돈이 좀 더 높은 수익을 위해 몰려들면 통화량 증가로 이어진다. 자국 통화가치가 올라 수출이 억제되기도 한다. 더 심각한 일은 부동산 시장 등에 몰려가 거품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대안은 무엇일까.

 “‘기준금리 인상=인플레이션 억제’란 등식이 요즘 현실에선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이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개념이다. 순간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의 반대 정책쯤 될 것이라는 생각은 퍼뜩 들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했다.

 -새로운 개념을 만든 것 같은데 무슨 뜻인가.

 “양적 완화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은행권에 반강제로 주입해 주는 일이다. 양적 긴축은 중앙은행이 은행권에서 반강제로 돈을 빼내는 일이다. 돈의 값(금리)을 움직여 봐야 효과가 떨어질 때 쓰는 방식이다.”

 -아주 생소한 말 같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은 이미 부분적으로 양적 긴축을 하고 있다. 중국은 매년 신규 대출 한도를 정해놓고 억제하고 있다. 한국도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으로 부동산 시장으로 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조율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양적 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정책 수단은 없는가.

 “은행 지급준비율을 높이는 게 대표적인 양적 긴축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이 맡긴 돈 가운데 상당 부분을 대출하지 못하도록 하면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돈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통상적인 금융통화정책의 종언인가.

 “현재 상황이 특수하니 기준금리를 움직여 봐야 기대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양적 완화도 장기 불황이란 일본의 특수한 상황에서 처음 개발됐다.”

 양적 완화를 처음 제시한 인물은 영국 사우샘프턴대 리하르트 베르너(경제학) 교수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은행(BOJ) 경제분석가로 활동했다. 그가 제시한 양적 완화가 낳은 부작용을 양적 긴축이란 새로운 처방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양적 긴축으로 인플레이션이 억제될 수 있을까.

 “현재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 등은 대출을 억제하고 돈을 흡수하는 양적 긴축 정책을 계속할 것이다. 심지어 창구 지도를 통해 은행이 특정 기업이나 분야에 대출을 해주는 것을 막기도 할 것이다. 그 파장을 무시하기 힘들 듯하다.”

 -어떤 후폭풍을 예상할 수 있을까.

 “양적 긴축을 계속하면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경제성장률도 하락할 것이다. 중국은 신흥국들의 성장을 이끄는 엔진이다. 이런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하면 대륙 시장에 상품을 수출하는 한국과 자원을 수출하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강남규 기자

◆프레드릭 뉴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과 와튼비즈니스스쿨 등에서 교수로 활동하다 HSBC에 영입된 경제 전문가다. 세계경제포럼(WEF) 단골 손님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과 중국 등의 중앙은행 통화정책을 주로 분석한다.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떠오르면서 그의 분석과 전망은 미국 월가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중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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