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멀어지는 매화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3호 10면

늙은 매화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산중생활 십 년이 넘다 보니 작대기 같은 매화 묘목도 제법 굵고 검은 가지에 흰 매화를 매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매화가 지고 난 후 매실을 쉽게 딸 요량으로 가지치기를 단단히 해서 고상하고 우아한 멋이 사라진 매화나무만 가득합니다. 해서 보다 게으른 농사를 지은 늙은 매화나무 밭을 찾아다녔습니다. 이곳 저곳을 헤매다 해지고 난 후, 달뜨기 전에 뉘엿뉘엿한 하늘빛에 물든 늙은 매화를 찾았습니다. 굵은 가지들이 뒤엉키고, 은근한 향을 뿜어대는 늙은 매화를 어슴푸레 땅거미 질 때까지 실컷 즐겼습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싱그러운 봄을 상징하는 매화 또한 이제는 질 때입니다. 뒤이어 피어나는 벚꽃과 잠시 만났다가 이내 자리를 내어 줄 시절입니다.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겪어야 할 일입니다. 쉽사리 자리를 내어줌이 녹록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보다는 ‘스스로’ 내어줌이 오히려 편할 듯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변화의 과정일 뿐 결론은 없듯, 저 역시 씨앗은 뿌리되 결실은 나의 몫이 아니라고 되뇌어봅니다. 늙은 매화가 그러랍니다. 매화는 봄을 열고, 벚꽃은 봄을 완성합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