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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허남진 칼럼

관광자원 대국 네팔의 궁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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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허남진
정치분야 대기자

네팔 사람들 눈으로 보면 한반도엔 산이 없다. 그냥 언덕일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높이 6000m 이상의 산이 수천 개란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비롯해 8000m 이상의 이른바 14좌 중 8개 봉우리가 네팔에 있다. 중국 티베트 지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북쪽 지역은 전역이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는 히말라야산맥이다. 힘들게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날씨가 맑으면 네팔 지역 어디에서나 신비롭고 장엄한 설산을 바라볼 수 있다. 네팔 자체가 웅대한 자연관광지인 셈이다.

 그뿐인가. 네팔 남부의 룸비니는 석가모니가 탄생한 곳이다. 그 성지를 순례하려고 전 세계에서 불교도들이 몰려든다. 힌두교 사원도 곳곳에 널려 있다. 그중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세계 4대 시바사원 중 하나다. 카트만두는 고지 1500m의 분지에 이뤄진 도시로 12~18세기 3개 왕조의 화려한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유네스코는 1979년 이 분지 자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곳을 포함, 네팔은 모두 4개의 세계 자연·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관광자원만 파먹어도 떵떵거리고 잘살 수 있는 천혜의 나라. 그러나 네팔은 그 훌륭한 자원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채 가난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특히 관문인 카트만두의 먼지와 매연은 네팔을 찾는 관광객들의 첫인상을 찌푸려뜨린다. 중앙선은 있으나 마나요, 신호등과 건널목도 없다.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자전거가 뒤엉키고 사람들은 아무 곳으로나 건너 다닌다. 가끔 소와 염소·개들까지 도로를 차지하는데 차들은 또 요란한 경적을 울려댄다. 뒷골목이나 개천은 쓰레기더미다. 빨랫줄에 각종 물건을 매달아놓은 것 같은 네팔어(힌두어) 간판들 또한 어지럽다. 총체적으로 어수선하고 지저분하다.

 한반도의 3분의 2쯤 되는 국토 전체가 최상의 관광자원으로 가득한 네팔. 그러나 인구 2900만 명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최빈국 네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네팔 사람들은 “정치가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네팔은 내전 끝에 2008년 왕정이 무너지고 이원집정제의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601명으로 구성된 의회는 정당이 25개나 된다. 그러니 중구난방이다. 물론 제1당 마오이스트당을 비롯, 민주당과 마르크스-레닌당 등 의석의 75%를 차지한 주요 3개 정당이 정치를 주도하고 있지만 이들의 생각이 또한 극과 극이다. 마오이스트당 소속 총리가 내정한 국방부 장관을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거부하면서 지금껏 조각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다. 지난 2월 마르크스-레닌당 소속의 새 총리로 교체됐지만 정치 일정은 제자리를 맴돈다. 공화국 체제에 맞는 신헌법 제정 약속 기한이 다음 달. 그러나 주요 정치세력 간에 그 절차에 대한 합의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액션 네팔’이란 사회복지단체 대표 B K 슐레스타(53)는 “정치인들이 파벌싸움만 벌이는 바람에 나라살림이 엉망”이라고 개탄했다. 국립 트리부반대의 40대 사회학 교수 케샵 사브코타는 “정부가 계획적인 국가개발에 나서려면 정치부터 안정돼야 하는데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현재 중동 및 북아프리카에선 재스민 민주화 혁명이 한창이다. 이미 튀니지와 이집트가 민주화를 쟁취했고, 내전을 겪고 있는 리비아를 비롯해 예멘·시리아·요르단·바레인 등에선 민주화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민중의 유혈 희생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제 민주주의는 이들 지역에서 거부할 수 없는 대세로 보인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민주화만 이뤄지면 그곳 주민들은 그 이전보다 훨씬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네팔의 휘청거리는 민주주의는 그에 대한 답변을 유보하고 있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 할 때인가.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연 성공적이고, 우리의 정치는 잘 굴러가는 것인가. 대통령부터 국회로 이어지는 정치계선상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얼굴이 화끈거려진다. 불통의 정치, 대결의 정치, 포퓰리즘의 정치. 그 부끄러운 자화상은 네팔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엊그제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대다수 중국인이 주민선거가 없는 현재의 정치체제를 지지하고 있어 중국에선 재스민 혁명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수의 중국인은 현재의 정치시스템이 변화될 경우 중국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현재의 정치 지도자들이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주된 이유로 국가적 번영을 꼽았다. 이러다 중국식 효율 정치를 벤치마킹하자는 이야기가 나올까 두렵다.

허남진 정치분야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