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가 열전] 조르주 들르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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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은 물론 편곡.지휘도 절대로 남에게 맡기지 않는 영화음악가들이 있다. 비발디의 '만돌린 협주곡'에서 악상을 따온 '리틀 로맨스'(79년)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프랑스 출신 조르주 들르뤼(1925~92)도 그 중 한명이다. 그는 작곡가의 개성은 음악의 섬세한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믿는 편이다.

시골밴드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다가 파리음악원에 입학, 현대음악의 거장 다리우스 미요를 사사한 그는 48년 스승의 권유로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지휘를 맡으면서 극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작곡한 영화음악만도 2백여편. 데뷔작은 알랭 르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 (58년)로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왈츠가 그의 작품이고 나머지는 조반니 푸스코가 음악을 맡았다.

알랭 르네. 루이 말.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등 누벨바그 영화의 기수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인간의 내면심리를 음악으로 잘 묘사해냈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피아니스트를 쏴라〉 (60년) 〈쥘과 짐〉 (61년)에서 들르뤼의 음악은 단순히 배경으로 깔리는 게 아니라 스크린의 전면에 부각돼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특히 쥘 다생 감독의 〈황혼의 약속〉 (71년)에는 사랑. 어린이. 시간의 흐름, 추억. 잃어버린 젊음과 행복에 대한 아픈 고통 등 들르뤼의 음악이 위력을 발휘할 만한 요소가 듬뿍 담겨 있다.

영국 감독 켄 러셀의 〈프렌치 드레싱〉 (65년), 앤서니 퀸 주연의 〈25시〉 (66년) 등에서 음악을 맡은 그는 70년대부터 할리우드에도 진출해 제인 폰다 주연의 〈줄리아〉 (77년) 〈신의 아그네스〉 (85년),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의 〈동반자〉 (92년)등을 작곡했으나 프랑스 영화에 비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플래툰〉 (86년)에서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막판에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고집해 들르뤼의 음악은 다소 빛이 바랜 느낌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을 위해 쓴 영화음악만을 따로 녹음한 음반이 97년 논서치 레이블로 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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