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살리려 ‘원숭이 품바’ 공연…하동 장날 장터서 1인극 펼친 교수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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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 교수가 2일 경남 하동군 하동읍 전통시장에서 원숭이 분장으로 공연하고 있다.


“하동 악양면에는 홍시도 많고, 하동시장엔 인정이 총총…”

 2일 오전 경남 하동군 하동읍 전통시장 문화마당. 원숭이 복장을 한 배우가 선창을 한 뒤 꽹과리를 치며 흥을 돋우자 관중이 “쾌지나 칭칭 나∼네”를 따라한다. 배우는 경상대 중어중문학과 한상덕(51) 교수다.

 그는 1시간쯤 진행된 품바공연 형태의 모노드라마에서 장터를 찾은 300여명과 막걸리를 나누고 함께 춤을 췄다. 지리산에서 자란 원숭이 한 마리가 트렁크를 끌며 시장을 찾는 장면을 시작으로 녹차·재첩·은어·참게 등 특산물을 소개한다. 그는 공연 도중에 막걸리 주전자와 재첩국 그릇을 들고 수시로 객석으로 뛰어들었다. 한 교수는 부인과 아들 등 가족까지 등장시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장면도 넣었다. 그는 부인 앞에서 “당신이 최고야”를 열창했다. 공연 끝 무렵에는 “여자 원숭이 한 마리 불러오겠다”며 치마 차림의 여자 원숭이로 변신하기도 했다.

 공연을 끝낸 뒤 300여 명에게 ‘상락’(常樂·항상 즐겁게 살자) 휘호도 한 장씩 나눠줬다.

 그의 시장마당 공연은 초등학교 친구인 이용우(52) 하동군 경제정책담당이 전통시장 부활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보고 돕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됐다. 한 교수는 하동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 손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둘러보던 전통시장이 쇠락하는 것이 가슴 아팠다. 고향 어르신들이 생산한 특산물들이 많이 팔리도록 교수 체면을 버리고 나의 재능을 기부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 연극인 출신이다. 그는 대학 시절 연극동아리 활동을 시작으로 졸업 뒤에는 전문극단의 배우로 무대에 섰다. 중국 우한(武漢)대학에서 박사과정 유학 중에도 중국극단에서 활동을 했다. 경남도 연극제에서 연기대상도 받았다.

 한 교수는 하동 시장 공연이 성공하면 경남도 내 다른 전통시장에 걸맞은 문화사업을 기획해 찾아갈 계획이다.

 조유행 하동군수는 “옛 전통시장은 물건만 거래하던 것이 아니라 인정을 나누고 볼거리가 풍성했던 곳이었다. 물건만 사고 파는 기능만 남으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한 교수의 공연이 전통시장을 되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하동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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