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국가 재정이냐 지자체 살림이냐 … 취득세 인하 논쟁 속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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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취득세 인하 방침 철회하라. 국회 법안통과 저지하겠다.”(지난달 31일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이미 부처 간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국회 논의를 지켜보겠다.”(1일 정부 고위관계자)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부활하는 대신 취득세를 줄여주는 내용의 ‘3·22 주택거래 활성화 방안’, 그 성패는 이달 임시국회에서 판가름 나게 됐다. 취득세 인하에 반발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세수를 과다하게 보전해줄 수 없다는 재정당국이 강하게 맞붙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취득세율을 9억원 이하 1인1주택자는 2%에서 1%로, 9억원 초과 1인1주택자나 다주택자는 4%에서 2%로 연말까지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지자체 사정을 고려해 취득세율 감면에 따른 지방세수 부족분을 전액 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액 보전’이라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셈법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양측은 수차례 머리를 맞댔으나 헛수고였다. 정부는 취득세 인하로 인한 거래 증가 효과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당초 지자체가 올해 예산을 짤 때 이용했던 세수 추계를 기준으로 실제 세수와의 부족분을 보전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지자체는 올해 취득세 세수 실적을 기준으로 취득세 인하로 못 받은 세수만큼 더 보전받기를 원했다.

 결국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 하는 정부는 가능한 한 보전규모를 줄이길 원했고, 지자체는 보전액을 최대화할 수 있는 공식을 원했던 셈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취득세수를 어떤 기준으로 보전하느냐에 따라 수천억원까지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세수 보전을 둘러싼 공방은 정치권으로도 확산됐다. 민주당은 지자체 세수 감소 등을 이유로 취득세 인하 반대를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인 심재철 의원은 지난달 말 지방교부세 재원을 내국세의 19.24%에서 21.24로 2%포인트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 지방교부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경우 내국세에서 전입되는 지방교부세가 3조원가량 증가해 취득세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분을 충분히 보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경우 지방교부세를 항구적으로 늘리는 효과가 있는 만큼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카드다. 여기에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지방분권촉진위원회 이방호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지방재정 강화를 위해 부가가치세의 5%를 지방에 배분하고 있는 지방소득세 세율을 내년 안에 10%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나라의 ‘곳간’ 사정을 따져야 하는 재정당국으로선 정치권에서 ‘우군’ 찾기가 힘들어지는 모양새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취득세 인하가 무산되면 정부 정책의 신뢰성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겠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재정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지자체에 과도하게 세수 보전을 해줄 수는 없는 일”이라며 “윤증현 장관도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이달 열리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지자체와 기획재정부의 입장 차이가 세수보전 태스크포스(TF) 활동을 통해 다소 좁혀졌다”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양측의 이견이 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22 대책에 취득세 인하 카드가 포함될 수 있도록 막후에서 조정한 청와대가 막판에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다시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런 논란 속에 정작 시장은 얼어붙었다. 취득세 인하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에는 거래 활성화 효과는커녕 주택 거래의 ‘동결효과’만 빚어지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세금 혜택을 받기 위해 법 개정 이후로 거래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서경호 기자

취득세 인하 파문 어떻게 진행됐나

▶ 3월 20일 : 당정협의

-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원상회복 의견접근

- 취득세 인하 관련 부처 간, 당정 이견 노출

▶ 3월 22일 : 정부 ‘주택거래 활성화 방안’ 발표

- DTI 원상회복, 주택거래 취득세율을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50% 인하 추진

- 지방자치단체의 세수 감소분은 ‘전액’ 보전하기로

▶ 3월 22일 이후 : 지자체 반발 확산

▶ 3월 24일 : 중앙정부와 시·도 부단체장 간담회

-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국토해양부 등 3개 부처 차관과 시·도의 부지사·부시장 참석

▶ 3월 28~30일 : 재정보전 검토 태스크포스(TF) 연속 회의

- 기획재정부 구본진 재정업무관리관을 반장으로 주택 취득세 경감에 따른 지방재정 보전 검토 TF 활동 시작

▶ 3월 31일 :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긴급대책회의

- 취득세 감면 방침 철회 요구

▶ 4월 임시국회 : 취득세 인하 무산? 갈등 극적 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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