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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곤 칼럼] 동반성장이 잘 안 되는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얼마나 갈까요?”
지난해 여름 정부가 대기업·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강조하자 대기업들의 첫 반응은 이랬다. 정부의 동반성장 드라이브가 얼마나 계속될 것 같으냐는 물음이었다. 대기업들은 저러다 말겠지, 생각하며 눈치를 살핀 것이다. 전봇대 규제를 뽑겠다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2년 넘게 내세워 왔던 정부였으니 대기업들로선 당황할 만도 했다.

“어느 정도 해야죠?”
정부의 압박이 이어지고, 일회성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대기업들은 다시 이렇게 물었다. 얼마나 성의를 보여야 정부가 만족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동반성장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그 뒤 동반성장은 국정 최우선 과제가 됐다. 하지만 정부는 불만스러워하고, 대기업은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동반성장이 생각보다 잘 안 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정부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참패 직후 동반성장을 들고 나왔다. 그때까지 추진했던 친기업·친시장의 MB노믹스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다들 경제정책 기조가 갑자기 바뀐 배경을 궁금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동반성장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동반성장이 필요하다는 정도는 누구나 다 안다. 그걸 실현할 방법이 어려워서 그렇지.

‘정책 기조가 바뀐 배경’에 대해 여기저기서 추측들이 나왔다. 가장 설득력 있는 게 정부가 지방선거 참패의 국면 전환 카드로 동반성장을 택했다는 것이었다. 인기 만회를 위한 정치적 제스처라는 뜻이다.

정부가 민간인으로 구성된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든 뒤 일은 더 꼬였다. 위원장을 맡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초과이익 공유제’라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들고 나왔다. 사회적으로도 합의되지 않은 것이었다. 논란이 이어지자 그는 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했다가 철회했다. 그는 “사의를 표하고, 일주일간 정부의 동반성장 의지를 체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위원장으로 임명된 분이 정부를 믿을 수 없어 정말 의지가 있는지 시험해 보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동반성장이 잘 안 되는 또 다른 원인은 당사자인 대기업들에 있다. 정부 주도의 동반성장을 쫓아가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대기업들은 지난해 여름 이후 정부의 독려 속에 동반성장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미 실행 중인 대책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거나 지원금액을 부풀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기업들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그동안 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준조세 등의 수많은 요구와 압력을 받아 왔다. ‘기업이 봉’이라는 피해의식이 적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또 하나 동반성장의 맹점은 대기업들이 주로 상대하는 1차 협력업체들 중에는 웬만한 대기업보다 형편이 나은 곳도 있다는 것이다. 진짜 도움이 필요한 곳은 1차 협력업체와 거래하는 2~4차 협력업체다. 이들이 빠진 채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 정부가 만드는 동반성장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갑·을 관계는 오랜 관행이다. 정부가 동반성장을 내건 지 1년도 안 돼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하는 게 애초에 무리인지도 모른다. 정부가 동반성장지수를 만들어 대기업을 줄 세운다고 될 일은 더더욱 아니다. 한쪽에서 몰아세우고, 다른 한쪽에선 몰리다 보면 부작용과 갈등만 커진다.

지금쯤 상황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경위야 어찌 됐든, 분명한 건 동반성장이 잠깐 떠들다 사라질 이슈는 아니라는 점이다. 여야와 좌우를 막론하고 동반성장을 외면하고, 시장 원리만 내세우기는 점점 어려운 세상이 되고 있다. 다음 정부에서도, 그 다음 정부에서도 동반성장을 강조할 게 틀림없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양극화가 깊어질수록 더 그럴 것이다.

정부는 친기업에서 동반성장으로 전환한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솔직하게 호소해 보는 건 어떨까. ‘친기업 정책을 펴 봤으나 동반성장이 더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무릅쓰고 정책 기조를 바꿨다. 정치 구호가 아니다. 시장을 거스르는 무리한 정책은 펴지 않겠다. 도와달라’고. 대기업도 마음을 좀 더 열 필요가 있다. 정부와 대기업이 터놓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얘기하면서 맞춰 가다 보면 상황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경제·산업 에디터 hkk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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