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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캐는 사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2호 10면

할 일이 있어도 걸핏하면 팽개치고 들판을 가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봄볕이 그러라고 부추깁니다. 멀리 보리밭둑에 빨간 바구니가 먼저 눈에 띄더니 밭둑에 앉은 할머니도 함께 보입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쑥 캐세요?” “쑥도 캐고, 나물도 캐고 그래.” “일찍 나오셨네요.” “성이 나서 일찍 나왔어.” “왜 아침부터 성이 나셨어요.” “영감이 아침부터 자꾸 성을 내잖아.” “내 어제 약장수 쫓아서 광주로, 어디로 돌아다니다 왔는데 영감이 진즉에 화가 났드만.” “영감 먹으라고 약을 38만원어치나 사왔는데 자꾸 성을 내는 거야.” “영지에, 도라지에 또 무슨 젓갈도 있고, 뭔지 모르지만 영감에게 좋다기에 사왔지.” “어제 한 봉투 먹더니 맛이 없는지 속아서 왔다고 계속 성을 내잖아.” “그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 대충 차려놓곤 바구니 들고 나왔지.” “그런 거 반품해도 돼요!” “약 가져왔으니 다달이 갚아야지. 내가 뭐에 홀렸어.” “저~기 동네 할미도 같이 갔는데 그 할미는 28만원밖에 안 샀대, 나는 38만원이나 샀는데.” “영감이 먹든 안 먹든 내 한 일이니 내 갚아야지.”

꽃샘추위는 들판의 봄을 얼리고, 약장수는 할머니 마음을 얼렸습니다. 그래도 할머니 마음속은 봄볕만큼 따뜻합니다. 보리 싹이 푸릅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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