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늘어난 중국 고객들, 나라 밖 중국 보물 되사기 열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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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호 08면

1 갤러리 코헨&코헨 (Cohen&Cohen)에서 출품한 도자기 표범 한 쌍. 1720년 청나라 강희제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관람객들을 향해 달려들 듯한 모습이 중국 미술 시장의 성장세를 은유하는 듯하다.Photo by Loraine Bodewes

3월 17일부터 27일까지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 열린 유러피언 아트페어(The European Fine Art Fair·이하 TEFAF)는 세계 최고의 럭셔리 아트페어로 꼽힌다. 26년 역사의 이 미술장터에 올해는 16개국에서 260개 갤러리가 참가했고, 55개국에서 7만3000여 명이 방문했다. 뮤지엄급 예술품을 판매하는 시장이라고 불리는 만큼 우피치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 내셔널 갤러리 등 전 세계 정상급 미술관 관계자들도 몰려들었다. 페어 기간 중 마스트리흐트 공항에는 각국의 VIP들을 태운 전용기가 154대나 착륙했다고 조직위는 집계했다.
VIP 고객을 모시는 주최 측의 노력도 각별하다. 페어장 입구는 한껏 정성을 쏟아 부운 꽃장식으로 유명한데, 올해는 16명의 꽃장식 전문가가 튤립·아네모네·마놀리아 등 총 14만4000송이의 꽃을 사용했다. VIP 오프닝에 고용된 요리사는 100여 명, 웨이터는 400명, 샴페인은 1800병, 와인은 3500병에 이른다.

세계 최고의 럭셔리 아트페어,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TEFAF를 가다

페어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관심을 끌었던 렘브란트의 초상화부터 찾아갔다. 뉴욕의 오토 나우만 갤러리에서 출품한 이 작품은 1658년 렘브란트가 그린 이름 모를 한 남자의 초상화다. 작품의 희귀성과 함께 역대 중요한 컬렉터들의 손을 거쳤다는 이유로 더 화제가 됐다. 물론 이 작품에 매겨진 가격도 놀라운 액수(4700만 달러!)였다. 정면을 응시한 그림 속 남자는 자신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무한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표정을 한 채 함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허리춤에 얹은 손 모양이 너무 어색했고 이로 인해 그림의 전체적인 균형이 깨져 있었다. 그렇다. 4700만 달러짜리 그림도 내 맘에 아니면 아닌 것이다.

렘브란트에 대한 실망을 뒤로하고 눈을 돌리니 프란스 할스, 루카스 크라나흐, 반 다이크 등 미술사의 중요한 올드 마스터 그림과 르누아르, 모네, 피카소, 미로 등의 수작들이 눈을 황홀하게 만들어 준다. 모던 섹션에서는 아니슈 카푸어, 빌 비올라, 도널드 저드, 루이즈 부르주아,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등의 모던과 현대미술 마스터의 작품들이 소개됐다. 앤티크 섹션에는 이집트·그리스·로마의 유물에서부터 중국 황실을 위해 제작된 도자기와 고대 무덤에서 발굴된 유적들, 아프리카 원시 미술품 등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다. 한국 갤러리로는 국제갤러리와 가나화랑이 참여했다.

2 TEFAF 전시장 내부. Photo by Loraine Bodewes

TEFAF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 중 하나가 ‘아트 이코노믹스(Arts Economics)’의 클레어 맥앤드루(Clare McAndrew) 박사다. 전년도 세계 미술 시장을 결산하는 중요한 자료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2010년의 글로벌 미술 시장:위기와 회복’이라는 주제로 2010년도 세계 미술 시장이 2008년과 2009년의 위기에서 회복하고 있다는 통계에 집중했다. 특히 영국을 따돌리고 미국에 이어 2위 자리를 차지한 중국 미술 시장의 급속한 성장세에 포커스를 맞췄다.
2010년도 세계 미술 시장 점유율은 미국 34%, 중국 23%, 영국 22%, 프랑스 6% 등의 순이었다. 특히 중국 미술 시장은 2009년도 규모에 비해 2010년도에는 두 배나 증가했고, 중국 경매 시장 통계로만 보자면 6년 동안 아홉 배가 넘는 성장을 하면서 경매 총액이 60억 달러에 이른다고 맥앤드루 박사는 밝혔다.

물론 맥앤드루 박사의 데이터는 미술 시장의 모든 거래 액수를 얻기 힘든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나온 통계라 100% 신뢰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아트넷(Artnet)이나 아트론(Artron) 등 세계적인 데이터베이스와 딜러연합 등의 다양한 리서치 자료를 종합한 결과로, 현재로서는 가장 신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로 꼽힌다.

3 TEFAF 전시장에서 작품을 둘러보는 관람객.

TEFAF 첫날 중국인에게 작품을 판매한 벨기에의 지젤 크로에 갤러리 관계자는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TEFAF를 찾는 고객들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들의 주된 목표는 전 세계에 흩어진 중국 보물들을 고국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주로 황실 제작 도자기 등에 집중하던 그들은 예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토굴 유물 등도 점점 많이 구입해 간다”고 덧붙였다.

때마침 프랑스의 미술 가격 데이터베이스인 아트프라이스닷컴에서도 TEFAF 기간 중 깜짝 놀랄 만한 뉴스를 발표했다. 바로 중국이 세계 미술 시장 점유율 33%를 기록하며 1위 국가가 됐다는 것이다. 이어 미국 30%, 영국 19%, 프랑스 5% 순이었다. 물론 이는 장식미술과 디자인을 제외한 순수미술품들의 경매 결과에만 기초를 둔 자료라 맥앤드루 박사의 데이터보다는 신용도가 훨씬 떨어진다. 그럼에도 세계 미술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중국의 야심 찬 움직임을 한번에 감지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파이낸셜 타임스의 미술 섹션 에디터인 조지나 애덤은 “중국 경매회사들의 경매 결과 조작 등 때문에 중국에서 나오는 데이터들을 신용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력과 자국의 보물 환원을 염원하는 애국심, 미술품을 수집하는 오랜 전통 등 중국 미술 시장이 갖는 긍정적 측면을 다소 과소평가한 발언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세계 미술 시장 1위로 등극한 중국 미술 시장에 대한 기대감은 현재 서양 미술계의 가장 큰 이슈다. 앞으로 중국으로 ‘금을 캐러 가는’ 해외 미술상들의 러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고 보니 TEFAF 페어장에서 보이는 동양인들이 예년보다 많이 늘었다. 조직위는 올해 중국 기자단을 대거 초청했다. 이제 TEFAF 부스장 곳곳에 중국말 서비스 통역들이 배치될 날도 멀지 않았다.
사진 TEFAF 조직위 제공


최선희씨는 런던 크리스티 인스티튜트에서 서양 미술사 디플로마를 받았다. 파리에 살면서 아트 컨설턴트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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