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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유례없는 준조세 폭탄 … 기업이 봉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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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대기업들에 매출액의 0.6%를 중소기업에 지원하라고 압박하는 모양이다. 겉으로는 “자율적 참여를 유도한다”고 하지만 반강제적인 준(準)조세나 다름없다. 0.6%라는 수치가 작은 것도 아니다. 지난해 매출액이 112조2500억원인 삼성전자의 경우 6735억원을 지원금으로 내야 동반성장 실적 평가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적자를 기록한 LG전자까지 877억원을 내야 할 판이다. 이뿐 아니다. 국회는 상장 대기업들이 의무적으로 변호사나 법학 교수를 ‘준법지원인’으로 채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기업들이 고위 공무원 출신의 낙하산 감사·사외이사에 이어 법조계 밥그릇까지 챙겨 주게 생겼다.

 툭하면 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관행은 우리 사회의 오래 묵은 고질병이다. ‘기업 프렌들리’를 내건 이명박 정부조차 ‘미소(美少) 금융’(무담보 소액대출) 사업을 강행할 때 기업의 팔을 비틀었다. 삼성이 3000억원, 현대기아차·LG·SK그룹 각 2000억원을 울며 겨자 먹기로 갹출했다. 이렇게 쌓인 준조세는 드디어 법인세와 맞먹는 수준이 됐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의 부담금은 법인세(34조8545억원)의 92.56%인 32조2644억원에 달했다. “준조세를 정비하겠다”는 정부의 다짐과 달리 부담금은 2003년(17조560억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으며, 지난 6년간 신설된 부담금만 무려 13개나 된다.

 이럴 바엔 차라리 법인세를 올리는 게 낫다. 생색을 내기 위해 법인세는 찔끔 깎아주면서 뭉텅이 준조세를 물린다면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부담금에 짓눌린 기업들이 어떻게 국제 경쟁력을 갖겠는가. ‘경제 활성화’의 보랏빛 기대는 희망사항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어제 “초과이익공유제는 이름을 바꾸더라도 내용은 유지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이런 강력한 의지 앞에 버텨낼 기업은 많지 않다. 결국 모든 부담을 떠안으며 봉(鳳)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업들이 악착같이 번 이익을 우리 사회의 화수분쯤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