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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철쭉이 핍니다, 마스터스가 열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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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타이거 우즈가 활짝 핀 철쭉 앞에서 퍼트를 준비하고 있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부지는 꽃 묘목장이었다. 각 홀은 꽃나무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30여 종의 철쭉은 마스터스 개막과 동시에 만개한다. 마스터스는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AP=본사특약]


세계 골프는 ‘4월 오거스타로부터 시작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전통과 자부심을 먹고 사는 ‘꿈의 무대’ 마스터스가 그곳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남자 골프 시즌 첫 메이저 대회로 흔히 ‘명인들의 잔치’라고 하죠. 골퍼라면 평생 대회 출전 그 자체가 영광이고 훈장입니다. 대회 개막을 일주일여 앞둔 마스터스를 golf&이 미리 찾아가 봅니다.

“깃발이 꽂힌 천국.”

“스포츠의 가장 아름다운 극장.”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 대한 찬사다. 오거스타는 아름답다. 4월 초 골프장의 층층나무는 꽃망울을 맺고 철쭉·개나리·목련이 흐드러진다. 특히 대회에 맞춰 만개하는 30여 종의 철쭉은 오거스타에선 마스터스와 동의어처럼 쓰인다. 오거스타 내셔널의 페어웨이는 새로 깐 녹색 카펫처럼 말끔하고 그린은 비단결 같다. 코스는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고 숲과 조화를 이룬다.

‘골프의 성인’ 존스·로버츠의 작품

안개 자욱한 래의 개울을 건너 화려한 꽃들이 만발한 아멘 코너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는 호건의 다리는 골퍼에겐 천국으로 가는 계단처럼 성스럽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골퍼의 이데아다. 마스터스는 찬란한 봄과 본격적인 골프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아름다운 페스티벌이다.

골프장은 1934년 ‘골프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보비 존스와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성공한 클리퍼드 로버츠가 만들었다. 존스는 1930년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곧바로 은퇴한 뒤 골프 코스를 만들기 시작 했다.

존스는 겨울철 자신이 골프를 위해 즐겨 찾던 따뜻한 오거스타를 선택했다. 존스와 로버츠는 오거스타에서 골프장 부지를 구하러 다니다 완벽한 땅을 발견했다. 존스는 “이 땅은 누가 골프 코스를 만들어주길 기다려 온 땅 같다”고 말했다. 땅은 개울이 굽이쳐 흐르는 꽃 묘목장이었다. 마스터스에 꽃이 만발하고 홀 이름이 모두 꽃나무인 것은 이 때문이다. 설계자인 앨리스터 매켄지는 코스를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링크스를 내륙에 맞게 변형한 스타일로 만들었다.

마스터스는 신비에 싸여 있다. 존스가 클럽을 만든 이유는 극성스러운 팬들을 피해 친구들과 골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조용한 안식처를 원했기 때문이다.

코스는 초기부터 폐쇄적이고 엄선된 회원들에게만 개방됐다. 그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클럽 회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클럽 내부의 일을 말할 수 없다. 클럽 회원이 누구인지도 공개되지 않는다. 클럽은 입회 신청을 받지 않는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입회가 거절됐다. 회원 선발은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클럽이 초대하는 형식을 취한다.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등이 포함된 파워 엘리트가 회원으로 알려져 있다.

검증된 자가 신화를 남기는 곳

출전 선수들도 엄선된다. 100명이 채 안 되는 선수만 초청장을 받는다. 브리티시 오픈·US오픈과 딴판이다. 두 오픈 대회는 예선을 통과하면 누구나 참가가 가능하다. 가장 많은 선수가 참가할 수 있도록 해가 긴 한여름에 대회를 연다. 참가 선수는 156명이다.

두 오픈은 열린 대회이고 마스터스는 닫힌 대회다. 선수들이 가장 나가기 어려운 대회가 마스터스다. 그래서 선수들이 가장 나가고 싶은 대회가 마스터스다. 우승자에 대한 예우는 끔찍하다. 그린재킷을 입고, 챔피언스 디너에 참가한다. 평생 출전권이 보장된다.

다른 메이저 대회에 비해 마스터스의 역대 챔피언은 화려했다. 검증되고 대중이 좋아하는 스타들이 마스터스에서 강했다. 잭 니클라우스(6회 우승), 타이거 우즈(4회), 아널드 파머(4회) 같은 최고 스타들이 유달리 마스터스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잘생긴 닉 팔도 경과 골프의 베이브 루스인 샘 스니드, 블랙 나이트 게리 플레이어가 3회씩 우승했다. 전설적 골퍼인 벤 호건과 바이런 넬슨도 두 차례 이름을 새겨놨다. 인기 스타 필 미켈슨과 프레드 커플스도 챔피언스 클럽 회원이다.

출전 선수가 적은 마스터스는 산술적으로 개별 선수의 우승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평생 출전권이 보장되는 고령의 역대 챔피언도 있어 실제 우승 경쟁을 하는 선수는 70명 정도에 불과하다.

잭 니클라우스는 메이저 대회, 특히 마스터스에서 우승하기가 가장 쉽다고 했다. B급 선수들은 메이저라는 존재 앞에서 긴장해 무너지기 십상이고 마스터스는 그린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처음 나오는 무명의 뜨내기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기가 쉽지 않다. 스타들을 위한 귀족 대회가 마스터스다.

다른 메이저 대회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코스에 남은 신화는 훨씬 더 풍부하다. 수퍼스타 보비 존스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데다 오거스타에서만 열리기 때문이다. 다른 메이저 대회는 매년 코스를 옮긴다. 마스터스는 2회 대회인 35년 진 사라센이 마지막 라운드 15번 홀에서 앨버트로스를 기록하면서 드라마틱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 때 “전 세계에 들릴 거대한 환호가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86년 46세의 잭 니클라우스는 이 대회 우승으로 중년 남자들의 가슴속에서 용기와 희망, 눈물을 끌어냈다. 타이거 우즈는 97년 마스터스에서 12타차로 우승하며 골프 황제에 등극했다. 우즈는 2001년 오거스타에서 4개 메이저 연속 우승인 타이거 슬램을 완성했다.

선수도 갤러리도 아무나 갈 수 없는 마스터스

갤러리가 되는 것도 어렵다. 본 대회 아닌 연습라운드 관람 티켓도 추첨을 통해 판다. 본 대회 티켓은 패트런(후원자)이라고 불리는 약 4만명의 사람만 구입할 수 있다. 한번 패트런이 되면 평생 티켓을 살 권리가 생긴다. 아무도 이 권리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패트런 신청은 72년 마감됐다. 대회 티켓 값은 다른 메이저 대회에 비해 싸며 패트런은 다른 사람들에게 티켓을 팔 수 있다. 나흘 입장 티켓 암표는 1만 달러 이상이다. 패트런은 이런 혜택을 받는 대신 의무도 많다. 패트런은 코스에서 뛸 수도 없고, 플래카드를 가지고 나올 수도 없으며, 코스에서 선수에게 사인을 요구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바로 쫓겨나며 이듬해부터는 티켓을 살 수 없다.

오거스타는 경기 중계권을 다른 메이저 대회보다 싸게 판다. 대신 방송사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통제를 받는다. 마스터스는 한 번도 중계방송사를 바꾸지 않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교체하기 위해 매년 계약을 갱신한다. 클럽의 귀에 거슬리는 품위 없는 말을 한 아나운서는 그만둬야 한다. 방송중계 시 광고는 한 시간에 4분으로 제한된다. 중계방송에 광고를 하는 기업은 존경 받는 회사여야 하며 클럽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방송사인 미국 CBS는 중계방송을 하면서 간판 프로그램인 ‘60분’을 제외하고 다른 프로그램의 예고를 할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반 9홀은 카메라에 잡지 못했다. 신비감이 있어야 하고 직접 대회장을 찾은 패트런이 시청자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아무나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갖고 싶은 초고가 명품처럼, 마스터스는 닫아둠으로써 신비함과 화려함을 얻었다. 대회는 4월 8일(한국시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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