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봉대산 불다람쥐’ 잡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12일 오후 6시54분 울산 동구 동부동 마골산 자락에 있는 한 아파트 CCTV에 H업체 작업복 차림의 50대 남자가 포착됐다. 등산로에서 내려와 이 아파트를 가로질러 나가는 장면이었다. 이로부터 2분 뒤 마골산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바로 인근의 봉대산에서 임야 0.15ha가 불탄 지 불과 2시간뒤의 일이다.

 울산동부경찰서는 CCTV에 잡힌 인물을 추적한 끝에 김모(52·회사원)씨를 방화혐의로 구속했다고 27일 밝혔다. 그의 집에 있던 등산복 조끼에서는 두루마리 화장지로 20여개의 성냥깨비를 감싼 뒤 새끼처럼 길게 꼰 방화용품 2점이 발견됐다.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던 김씨는 12시간여만에 고개를 떨궜다.

 “15년전 집안 문제로 화가 나서 처음 방화를 했다. 멀리서 연기와 불꽃이 치솟고 헬기가 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에 마약처럼 빠져 들었다. 봉대산·마골산에서 발생한 90여건의 산불 대부분은 내가 저질렀다.”

 울산동부경찰서 전영철 수사과장은 “봉대산 불다람쥐의 불장난극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해마다 10여차례씩 수백명의 공무원들이 보초를 서느라 밤잠을 설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봉대산 불다람쥐는 현대중공업 인근에 있는 봉대산을 중심으로 마골산·염포산까지 포함하는 반경 3㎞이내를 뱅뱅 돌며 잇따라 발생한 산불 방화범을 지칭하는 별명이다. 1995년부터 3월말까지 매년 10여차례씩 150여 차례에 걸쳐 산불이 발생했지만 범인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 

 경찰조사결과 김씨가 16년간 태운 임야 면적은 81.9㏊로 나타났다. 축구장(국제 규격 7140㎡ 기준) 114개에 이르는 크기다. 첫 방화는 1995년 초로 봉대산 3㏊가 사라졌다. 가장 최근인 이달 13일 마골산 0.04㏊가 불에 탔다. 동구는 산림청 기준으로 피해 금액을 18억원으로 추산했다. 

 그동안 울산시는 방화범을 잡기위해 포상금을 3억원을 내거는 등 초비상 상태였다. 하지만, 시민제보가 아니라 경찰 수사 끝에 범인이 잡히자 울산시는 “유공자에 대해 포상금 대신 1계급 특진과 표창을 하기로 울산경찰청과 합의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한편 방화 혐의자 김씨가 소속된 회사 동료들은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서 부하직원만 30여명인 중간간부(기원:현장 반장과 부장 사이 직급)으로 성실성을 인정받은데다 연봉도 1억원대여서 사회에 불만을 품을 까닭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또 김씨의 검거로 봉대산 불다람쥐 사건이 종결됐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씨는 자신의 집 인근에서 발생한 90여건의 방화만 인정했기 때문에 비슷한 유형의 인근 염포산 방화범은 따로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기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