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앤드 킹 〈Anna and the King〉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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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먹는 식단에 지쳐 외식(外食)을 하듯 헐리우드가 다뤄오던 '동양의 신비'는 이젠 '별식(別食)'을 넘어선 새로운 유행사조가 된 듯하다. 동양적 메세지나 소재 혹은 동양출신 감독과 연기자 등이 더이상 특별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헐리우드에 요즘 색다른 '동서양의 만남'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2회에 빛나는 헐리우드 최고 지성파 여배우 조디 포스터(37)와 홍콩을 대표하는 액션스타 저우룬파(周潤發. 44)의 '어울릴 것 같지않은' 만남이 바로 그것.

둘은 율 브리너·데보라 카 주연의 〈왕과 나(King and I)(56)의 최신 리메이크 버젼이며 19세기 시암(태국의 전신)의 왕실 가정교사로 실존했던 애나 레노웬스의 자서전을 영화화한 세번째 작품〈애나 앤드 킹〉(감독. 앤디 테넌트)에서 영국인 가정교사 '애나 레노웬스'와 샴의 '뭉크트 국왕'으로 출연, 애틋한 로맨스를 그려간다.

작품대 작품·배우대 배우 간 비교에 익숙해져 있는 영화팬들에겐 뮤지컬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왕과 나〉와 350에이커 골프장에 세워진 실제 왕궁규모의 세트와 수천명의 엑스트라 등 '슈퍼헤비급' 규모를 자랑하는〈애나 앤드 킹〉중 어느 것이 높은 점수를 따게 될지, 저우룬파·조디 포스터의 커플 연기가 율 브리너·데보라 카의 그것에 비견되는 한세대 동안 지속되는 강한 인상을 남길 지는 미지수다.

시암 왕실파티에 초대된 영국귀족들의 문화적 우월주의를 반박하는 조디포스터의 애나는 〈티벳에서의 칠년〉에 나오는 달라이라마의 오스트리아인 친구만큼이나 동양에 우호적이며 반란군을 막기위해 몸소 다리에 폭탄을 설치하는 저우룬파의 '뭉크트 왕'은 〈에어포스 원〉〈인디펜던트 데이〉의 젊은 대통령 만큼이나 용감하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서양은 더욱 동양에 가까워지고 동양은 더욱 서양적으로 변한 것.〈애나 앤드 킹〉에 출연하면서 동양문화·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표명한 조디 포스터와 93년 헐리우드에 진출해〈커럽터〉〈리플레이스먼트 킬러〉에 이어 세번째 작품에 출연하면서 헐리우드 스타로의 입지를 확고히한 저우룬파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 싶어 흥미롭다.

전통적으로 연말·연초시즌에는 자극적인 액션과 정사신에 식상한 영화팬들이 가족적이거나 애잔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만큼 다가오는 '국경을 넘는 사랑' 〈애나 앤드 킹〉이 새천년 극장가 흥행을 주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내 개봉은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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