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일본 재탄생이냐 추락이냐 … 역동적 리더십에 달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신문 주필.

일본의 대표적 저널리스트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67)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19일 중앙SUNDAY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일본은 대지진으로 재탄생(rebirth)과 추락(free fall)의 기로에 섰다”며 “역동적인 리더십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열도는 분수령의 순간을 맞이했다”며 “일본을 리셋(reset)해야 하는 이 시점에 일본의 정치 리더십이 이 위기를 헤쳐나갈 것인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중앙sunday 3월20일자>

-‘일본 리셋’을 위한 방법은.

 “역동적 리더십이 열쇠다. 매일 (후쿠시마) 원전 관련 새 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혁신적 대처, 역동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많은 이가 정부를 비판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난 비관적이지 않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처에서 정치인·관료가 보인 헌신과 협력은 오히려 꽤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한국인들이 1997년 금융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에서 보여주었듯이 국민의 불굴의 의지가 있으면 못할 것도 없다. 개인적으로 감동을 많이 받았던 당시 한국인의 의연한 모습을 요즘 많이 떠올리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를 비롯한 많은 이가 이번 대지진을 “전후 일본 최대 위기”라고 하는데.

 “내가 느끼기엔 일본 역사상 최대의 위기다. 이번 지진은 일본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고, 일본이 가진 문제를 다 헤집어 놓았다. 이번 지진은 가장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일본의 취약점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단순 자연 재해가 아니다. 일본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을 위기다. 일본이 안고 있는 고령화, 원자력 의존, 지역 소외 문제를 적나라하게 들춰냈다. 지진의 피해자 대부분이 노약자들이고, 후쿠시마 원전은 우리가 얼마나 치명타를 입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다 (구호 물품 등의) 운송 차질에선 지역 소외 문제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지진은 일본 사회가 가진 전반적인 취약성에 현미경을 갖다 댄 셈이다. 지진의 어둠이 걷히면 진짜 위기 상황이 닥쳐올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은 지금 총체적 위기다. 리셋이 잘 되면 일본은 위기를 기회로 새롭게 탄생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은 급전직하할 것이다. 세계 3위 경제 규모인 일본의 추락은 전 세계 위기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일본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이번 지진이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다른 점이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쏟아지는 격려다. 95년 지진은 일본만의 문제로 비춰졌지만 이번엔 세계인 모두가 움직였다. 한국·미국은 물론 지난해 센카쿠 열도 문제로 분쟁이 있었던 중국까지 일본을 돕고 있다. 한국의 구조대는 신속하게 일본에 와주었고, 배용준씨 등이 보여준 우정은 일본인을 감동시켰다. 인터넷에서도 전 세계인들이 일본을 격려하고 있다. 이를 경험한 일본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더욱 글로벌한 국가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동북아 정세에 대한 영향도 적잖을 것 같다.

 “일본이 동북아 관계를 더욱 챙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 문제 등 껄끄러운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해도 적어도 한·일 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마음에 걸리는 점은 북한이 지진으로 경황이 없는 틈을 이용할 가능성이다. 최근 ‘우라늄도 6자회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북한이 한 것을 보면 그런 우려는 더 커진다. 마침 천안함 사건 1주년(3월26일)인데, 북한은 아직 제대로 된 해명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기 위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이번 지진에서 우리는 핵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목도했다. 북한의 핵에 대해 더욱 조심성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 내 원자력 에 대한 논란도 커질 텐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일본인이 핵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animosity)을 극복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현재 일본의 원자력 의존도는 40%에 달한다. 하지만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해 향후 10년간 일본에서 원전 건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핵에 대한 적개심을 극복해내기 위해선 또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일본 정부는 에너지 분야에 대한 정책을 완전히 새로 짜야 할 것이다.”

-일본 국민의 차분한 대응과 ‘메이와쿠 문화(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가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메이와쿠 문화’에 대한 과도한 칭찬은 개인적으로 불편하다. 나는 오히려 일본인들의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모습에서 우려가 읽힌다. 이 크나큰 재앙을 겪은 후에 그렇게 차분할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는 체념과 포기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재앙을 겪은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힘 없이 무릎을 꿇는 운명론이 일본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운명론의 포로가 돼선 안 될 것이다.”

전수진 기자

◆후나바시 요이치=아사히신문 베이징·워싱턴 특파원, 미국 총국장과 칼럼니스트를 거쳐 2007년 30년간 공석이던 주필에 올랐으며, 지난해 12월 퇴임했다. 국제보도로 1994년 일본기자클럽상을 수상했으며, 『일미 경제마찰』『통화열열(烈烈)』 『김정일 최후의 도박(The peninsula question)』 등 숱한 명저를 남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