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 '아시아적 가치' 버리나…개방·국제화로 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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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하며 반(反)서방의 선두에 섰던 말레이시아가 개방화.국제화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성장 중심의 개발독재 전략도 수정해 평등한 분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다.

말레이시아의 뉴 스트레이트 타임스는 지난 6일 이례적으로 경제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실었다.

친여(親與)성향이 강한 이 신문의 보도는 마하티르의 정책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IMF에 고개를 숙이느니 차라리 가난하게 살겠다" 던 마하티르도 국제화를 무작정 거스르기에는 한계에 부닥쳤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70~80년대 아시아의 성장을 이끌었던 '아시아적 가치' 가 말레이시아를 끝으로 국제화의 물결에 밀려나는 것일까.

◇ 마하티르의 고민〓연평균 8%의 성장을 이끌었던 과거 정책들이 한계에 달했다.
부미푸트라(말레이계 인종의 통칭) 우대 정책은 부미푸트라의 부를 끌어올리는데 성공했지만 상대적 빈곤감을 심화시켰다.

부미푸트라 기업인에게 특혜를 주느라 손해를 본 돈만 수십억달러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외환통제책의 부작용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
이지메(집단 따돌림)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신인도는 바닥이다.

위기극복은 외환정책보다 반도체(말레이시아 제조업의 40%)호황으로 인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자유무역의 확대도 짐이다.

아세안이 2010년까지 관세를 완전 철폐키로 해 자동차.철강산업의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하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로서 자유무역을 거부할 수도 없는 처지다.

정치.사회적 환경도 마하티르를 옥죄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젊은이들의 의식을 붙들어 놓기엔 한계가 있다.
지난달 조기 총선을 실시한 것도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동부 농업지대와 남서부 산업지대의 불균형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안와르 전 부총리의 부인 완 아지자가 당선된 곳도 북동부 지역이다.
특히 이번 총선을 계기로 인종으로 나뉘던 정치 지형이 계층.계급간 갈등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들도 제기됐다.

◇ 마하티르의 새로운 카드〓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외자 유치를 하고 세계 무역체제에 편입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동남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멀티미디어 슈퍼 회랑' 의 성공을 위해 외국인 투자에 대한 세제혜택, 첨단제품 무관세 수입 등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배타적인 블록화도 세계무역 질서 내에서의 협력쪽으로 바뀌고 있다.
90년 동아시아 경제그룹의 설립을 주창했던 마하티르는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내의 동아시아 경제 각료회의를 강조하고 있다.

아두라 아흐마드 바다위 부총리는 지난달 "정책의 초점이 인종간의 불평등에서 계층간의 불균형으로 옮겨가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마하티르의 유력한 후계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정재완(鄭在完)전문연구원은 "마하티르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사람들이 모두 자유시장 신봉자들"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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