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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추격자 박정환 vs 1인자 이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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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추격자 박정환(左), vs 1인자 이세돌(右)


하늘이 일부러 때를 늦춘 것일까. 일인자 이세돌 9단과 ‘포스트 이세돌’의 영순위 후보로 거론되는 18세 천재기사 박정환 9단은 지금껏 결승에서 만난 적이 없다. 이세돌은 33번이나 우승했고 박정환도 어언 4번 우승했다. 박정환의 프로 생활도 벌써 5년째. 그러나 매우 희귀하게도 이들 두 사람은 지금껏 예선전에서만 단 4번 맞붙었을 뿐이다(이세돌 3승1패. 2010년 1승1패). 한데 ‘10단’이란 타이틀을 놓고 두 기사가 맞붙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바둑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주말 준결승의 고비를 넘는다면 이세돌 대 박정환의 결승전이 성사될 것이고 이 대결은 올해 전반기 최고의 빅 매치가 될 것 같다.

 한국랭킹 3위 박정환은 지난 주말 원익배 10단전 8강전에서 강적 최철한 9단(랭킹 2위)을 격파하며 준결승에 올라 19일 강유택(20) 3단과 맞선다. 강유택은 랭킹 14위의 기사. 박정환으로선 큰 산을 넘어 이제 작은 구릉 하나만 남긴 셈이지만 강유택이란 존재가 의외로 만만치 않다. 그는 아직 우승이 없는 신예임에 분명하지만 최근 부쩍 실력이 좋아지며 후지쓰배 선발전에서 이창호 9단을 꺾고 대표가 됐고 무엇보다 박정한과의 상대 전적에서 2승1패로 앞서고 있다는 점이 험난한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부동의 랭킹 1위 이세돌 9단은 20일 이영구(24) 8단과 준결승에서 대결한다. 이영구는 랭킹 11위. 프로 10년 동안 준우승을 4번 했을 뿐 아직 정상에는 오른 적이 없는 만큼 전력상 이세돌의 적수가 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영구는 상대전적만 본다면 이세돌의 ‘천적’이나 다름없다. 이세돌 쪽이 3승5패로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세돌과 박정환은 자신의 천적들을 제치고 결승에 오를 수 있을까.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게 바둑계의 관측이다.

 박정환은 18세에 접어들며 바둑이 더욱 묵직해졌다. 본래 안정감 높은 바둑을 구사하는 박정환이지만 최근 들어 더욱 힘이 실렸다는 평가다. 그의 스승 권갑룡 7단은 박정환을 두고 “내 제자지만 징그러울 정도다. 무섭게 냉정하고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풍에서 이창호-이세돌을 반반씩 닮았다는 분석이지만 광채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점에선 이창호 쪽을 더 닮았다고 볼 수 있다. 박정환은 벌써 3년 전부터 차기 대권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고 수시로 좋은 성적도 올렸지만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별로 없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확실한 보폭으로 차근차근 ‘이세돌’이란 목표를 향해 전진해 왔을 뿐이다. 천재의 광채가 유달리 화려한 이세돌과 크게 대비되는 점이다.

 비록 나이가 18세에 불과하지만 무르익을 대로 익은 박정환이기에 일인자 이세돌과의 한 판 승부가 더욱 기대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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