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PC 돌풍

중앙일보

입력

올 한해동안 `컴퓨터(PC)''란 단어 앞에 항상 붙어 다닌 한마디는 `저가''라는 수식어였다.

그만큼 `저가컴퓨터''는 1999년 한해동안 국내 컴퓨터 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최대 화두였다.

`출혈경쟁''이란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각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일년내내 치열하게 벌인 가격인하 전쟁은 그동안 돈 때문에 컴퓨터를 구입하지 못한 서민들에게 정보화 기회를 제공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특히 인터넷PC 공급정책을 추진한 정보통신부에 의해 지난 9월부터 100만원 미만의 PC가 국민들에게 보급되면서 저가PC의 파고는 정점에 달했다.

저가 PC 현상은 지구촌이 디지털 신경체계로 연결될 밀레니엄 시대를 앞두고 나타났다는 점에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정보화 분야 경쟁력을 한단계 올려놓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가격인하 바람을 몰고온 선두주자는 `이머신즈''라는 유통법인을 만들어 단숨에 미국에서의 시장점유율 3위에 오른 삼보컴퓨터였다.
`마의 가격(Magic Price)''으로 불린 1천달러 이하의 PC를 내놓고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삼보는 국내에서도 지난 6월 업계 최초로 99만원대의 PC인 `드림시스EZ-6400S''를 발표, 저가 컴퓨터 시대의 문을 열었다.

`컴퓨터의 대중화''란 기치를 내걸고 삼보가 이 제품을 내놓을 때만 해도 업계에서는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조립PC가 아닌 브랜드PC가 100만원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단언해 온 PC업계의 입장에서는 삼보의 전략이 분명 충격적이었지만 어쨌든 이 제품은 예상을 뒤엎고 판매개시 보름만에 1만대가 팔려나가는 저력을 보였다.

머지 않아 단종될 것이라며 부러움반 시샘반으로 쳐다보던 경쟁사의 눈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 제품은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치면서 연말까지 10만대(회사측 추정치)가 팔릴 전망이다.

삼보는 가격에 대한 고객의 요구를 정확하게 진단함으로써 IMF 여파로 꽁꽁 얼어붙은 국내 컴퓨터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아냈으며 덕분에 한때 부도위기까지 맞았던 악몽을 뒤로 하고 올해 세계적인 PC업체로 발돋움했다.

삼보가 불을 지핀 저가컴퓨터 시장에는 대다수 중소업체들도 뛰어 들었다.
진작부터 값싼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해 온 중소업체들은 브랜드의 상대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생존전략을 찾을 수 없었으며 가격파괴 대열에는 용산전자상가의 조립업체들도 합세했다.

이에 따라 시중에는 과거 상상하기 힘들었던 70-80만원대의 컴퓨터가 나뒹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지난 6월말 ㈜테크노마케팅그룹이란 업체는 55만원짜리 PC를 출시, 컴퓨터 업계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 회사가 내놓은 제품은 셀러론 366㎒의 CPU와 32MB의 메모리, 4.3GB의 HDD, 24배속 CD롬, 56Kbps 모뎀과 4MB의 비디오카드 및 사운드카드를 탑재, 문서작성은 물론 인터넷이나 게임을 하는데 충분한 멀티미디어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이같은 추세속에 많은 업체들이 PC통신에 가입, 일정기간 사용료를 내면 공짜로PC를 주는 ''프리 PC'' 마케팅을 도입, 서민들의 목돈부담을 크게 줄여줬다.

현주컴퓨터가 PC통신 천리안과 함께 지난 5월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 이 판매방식은 소비자가 천리안에 가입해 3년간 월 일정액(4-7만원)을 내면 원하는 PC를 제공하는 것으로 판매개시 20일만에 4천대가 팔려 나갔다.

프리PC 제도가 인기를 끌자 중소업체는 물론 4대 메이저업체인 삼보컴퓨터와 대우통신도 각 PC통신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할부판매에 나섰으며 이 방식으로 PC를 구입한 사람은 평균 15-20%의 할인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올해를 저가컴퓨터의 전성시대로 규정지을 만한 사건은 인터넷PC의 등장이었다.

정보통신부는 정보화의 상대적 소외 계층인 서민들에게 PC를 대량 보급, 국민정보화를 앞당기기 위해 100만원 미만의 인터넷PC를 정부차원에서 공급키로 하고 지난9월 12개 공급업체를 선정, 발표했다.

우편적금에 가입해 1-2회만 불입하면 고성능의 PC를 구입할수 있게 됨에 따라 그동안 비싼 가격으로 인해 PC를 구입하지 못했던 농어촌 서민들도 큰 부담없이 PC를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사업에 불참한 대형 메이커들도 정통부가 인터넷PC 사업을 강행하자 경쟁적으로 자사제품의 가격을 내렸으며 결과적으로 인터넷PC는 국내PC가격의 거품을 상당부분 제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대기업의 경우 지난 8-9월만 해도 셀러론 400㎒의 PC를 180만-200만원에 팔았으나 10월 이후 120만원으로 내렸다.

인터넷PC 구입을 위한 우편적금의 가입자는 몇달만에 15만명을 넘어섰고 가입자중 5만명이 이미 PC를 구입했으며 이들의 40% 이상이 농어촌 거주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올 한해동안 국내 컴퓨터업계에 몰아쳤던 저가 컴퓨터의 바람은 PC의 대중화를 몰고 왔으며 이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정통부에 따르면 올 한해 PC판매량은 지난해의 130만대보다 무려 76.4%가 증가한 230만대에 이르며 따라서 국내 PC 보급대수도 지난해 730만대에서 올 연말에는 960만대, 내년초에 1천만대를 초과할 전망이다.

결국 저가 컴퓨터의 돌풍은 PC가 `선택제품''이 아닌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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