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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여자 에디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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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일본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지구의 축이 2.5cm 기울었다. 후천 개벽 사상의 예언에 따르면 지축이 똑바로 서면 남녀평등시대가 도래한다. 완벽한 남녀평등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여성의 약진은 눈부시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3월 14일자에 특집으로 정치·문학·건축·사진 등의 분야에서 ‘세계를 흔드는 여성 150인’을 선정했다.

 발명 분야에서도 여성의 도약은 멈추지 않고 있다. 여성 발명인들은 식기세척기, 비듬 샴푸, 냉장고, 일회용 세척기, 반송 우편 봉투, 자동차 와이퍼, 수정액, 케블라 섬유(방탄복의 소재)처럼 일상 생활과도 밀접한 발명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여성 발명인 중에는 스타도 많다. ‘여자 에디슨’이라 불린 마거릿 나이트(1838~1914)는 종이백을 만드는 기계를 발명했다. 새러 워커(1867~1919)는 역경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귀감이다. 그의 부모는 노예 출신이었다. 워커는 7세에 고아가 되고 20세에 과부가 됐다. 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머리 로션, 크림, 헤어스타일링 머리빗을 발명했고 미국 최초의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로 기록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발명 시대가 개막하고 있다. 1999년 설립된 한국여성발명협회(회장 한미영·www.inventor.or.kr)가 ‘생활발명’을 모토로 발명진흥사업을 펼치면서 여성 발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산업재산권 출원도 증가했다. 한국여성발명협회는 왕초보 여성이라도 발명 교육에서 출원, 사업화까지 달성할 수 있도록 원스톱(one-stop) 지원을 하고 있다. 협회는 지식재산권설명회를 열고 여성발명품박람회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올해에도 5월 4~7일 개최되는 대한민국세계여성발명대회와 여성발명품박람회에 참가할 개인·업체의 신청접수를 3월 31일까지 받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2001년 여성의 산업재산권 출원이 1만1419건이었던 것에 비해 2009년에는 2만726건으로 81.5%나 늘었다.

 그러나 산업재산권 등록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4.0%(2009년)에 불과하다. 4.0%가 50%가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스라엘과 미국도 전체 특허 등록에서 여성의 비중은 각기 2%, 10%에 불과하다. 여성 발명은 남녀평등의 마지막 프런티어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여성 발명의 미래는 밝다. 여성에게 비교 우위가 있는 경제 분야가 증가하고 있고, 여성의 섬세한 감성마케팅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성의 발명품은 실생활과 밀접해 사업화 가능성이 크고 시장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우리 여성이 발명한 식용유 정제기, 청국장 잼, 분리형 운동화, 해초류를 이용한 친환경 탈취제 등은 사업화에 성공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발명을 통한 지식재산권 갖기 운동은 여성이 출산·육아와 같은 가정 내 역할을 완수하면서도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부합되는 경제력을 확보하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여성 발명의 진흥은 남녀평등을 제고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남녀평등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거둔 성과는 아직 부끄러운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성 격차 지수나 유엔개발계획(UNDP)의 여성권한척도(GEM)는 모두 하위권이다. 여성 발명은 농촌 살리기 운동이기도 하다. 한국여성발명협회는 농산물 관련 지식재산권의 출원을 높이기 위해 ‘우리 농촌 지식재산권 갖기’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언젠가는 ‘남성 발명’ ‘여성 발명’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여성 발명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사회적 관심의 제고가 절실하다. 뉴스위크가 발표한 ‘세계를 흔드는 여성 150명’에는 대북 농업지원 사업을 펼쳐온 재미교포 김필주 박사와 미국 공교육 개혁을 주창해온 미셸 리 전 워싱턴 DC 교육감도 포함됐다. 앞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목록에 한국의 여성 발명인, 한국의 ‘여자 에디슨’이 포함되기를 기대한다.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