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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빵 두 개, 물 세 컵 대피소서 칼잠 자며 버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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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인 센다이를 비롯한 동북 지역의 교민과 유학생들이 15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마중 나온 가족들과 만나고 있다. 귀국한 조카와 만나 입국장을 나서는 이모. [변선구 기자]

사상 최악의 강진과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를 덮친 지 나흘 만인 15일 지진의 직격탄을 맞았던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臺)시와 인근 지역 교민 80여 명이 1차로 귀국했다. 이들은 이날 낮 12시10분 인천공항에 KE764편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다. 센다이 교민들이 단체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이들은 주(駐)센다이 총영사관 측에서 준비한 차를 타고 4시간30분 거리에 있는 니가타(新潟) 공항으로 이동한 뒤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센다이 공항은 지진 피해로 폐쇄된 상태다.

“악몽 같은 5일이었어요. 쉬고 싶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한국에 돌아온 손인자(43·여)씨는 며칠 동안 감지 못한 머리를 만지며 “피곤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목사인 남편과 함께 일본 센다이시 미야기노(宮城野)구에 교회를 세운 지 7년 만이었다. 그동안 몇 번의 작은 지진을 경험했으나 이번만큼 공포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바닥과 건물 전체가 폭탄을 맞은 듯 흔들렸고, 여기저기서 집기들이 쏟아져 흉기로 돌변했다.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의 가족은 임시 대피소인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5일을 버텼다. 집은 곳곳에 금이 가 붕괴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가스·수도·전기·통신은 모두 끊겼고, 탈출할 차량도 없었다. 음식과 물이 있는 곳은 대피소가 유일했다.

 1000여 명의 피해 주민이 운집한 체육관은 너무 비좁아 옆으로 누워 잠을 청해야 했다. 씻을 물은커녕 마실 물도 부족했다.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딱 3컵만 배급됐다.

음식도 점점 동이 나는지 배급량이 하루 세 끼에서 두 끼로 줄었고, 그마저 밥 대신 빵이 나왔다. 등유나 가솔린 탱크도 바닥이 나 추위에 떨었다. 그래도 손씨는 “음식이 나오기 때문에 대피소에 있는 사람은 나은 편”이라며 “체육관 수용인원이 제한돼 있어 붕괴 위험이 있는 집에서 대기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손씨가 살던 곳은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바다와 인접한 인근 마을 와카바야시(若林)구엔 쓰나미 피해를 입었다. 남편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신자가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자전거로 바닷가 마을을 돌았지만 그곳에서 본 것은 300여 구의 시신뿐이었다.

손씨는 “교민 중에는 천장까지 바닷물이 들이찬 가운데 농구공을 끌어안고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무조건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영사관에서 니가타 공항행 차를 탔다. 남편은 신자들을 돕겠다며 일본에 남았다. 그는 “영사관의 배려로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이 먼저 나올 수 있었다”며 “한 달짜리 왕복 티켓을 끊었는데, 다시 돌아갈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고 했다.

 이날 현지 유학생들도 함께 입국했다. 이달 초 어학연수차 일본에 갔던 김애리(29·여)씨는 “지진에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데 피할 곳이 없어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한두 군데 문을 연 마트에 수백 명이 서 있어서 3~4시간은 기다려야 할 만큼 상황이 열악했다”며 “사재기를 막기 위해 사는 물건의 양도 제한돼 있었다”고 했다. 다른 교민들도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는 물자 부족 사태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자동차에 기름이 없어 발이 묶인 교민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도호쿠(東北)대학 공학연구과 박사과정 3년차인 유창호(34)씨는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져 귀국했다. 그는 “표를 구하지 못해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현재 대학에 석·박사 과정, 교환학생 등을 포함해 200여 명의 한국 학생이 있는데 대부분이 현지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교수들은 여진의 위험성을 우려하며 직접 유학생들에게 귀국하라고 권했다”며 “통신이 끊겨 지인들에게 연락도 못했는데, 빨리 집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이날 입국자 대다수는 노인이나 어린아이가 있는 부모와 학생들이었다. 현재 센다이 총영사관에 대피해 있는 인원은 200여 명. 영사관 측은 노약자 우선으로 귀국 순번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김효은·채승기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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