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해놓고 환율 떨어져 눈덩이 손실 기업 잇따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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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의 전자부품업체 K사는 지난 9월 7일 커넥터 50만달러 어치를 3개월 후 결제조건으로 수출계약을 했다.

이날의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천1백93.5원, 부산 선물거래소의 12월물 선물환율은 달러당 1천1백94.8원이었다.

자금담당 임원은 3개월 후 달러가 들어오는 것을 생각해 이 선물환율로 환율변동 위험을 회피(헤지)하자고 제안했으나 이 회사 사장은 대우사태와 외환당국의 환율안정 의지를 거론하며 반대했다.

그러나 11월초 이후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져 이 회사가 수출대금을 받은 지난 7일의 환율은 1천1백39.5원에 불과해 앉아서 2천7백만원을 손해봤다.

미리 선물환율로 달러를 팔았더라면 수출마진 4%를 그대로 건질 수 있었으나 가만히 앉아있는 사이 환율이 5%나 떨어져 적자수출을 한 셈이었다.

이 자금담당 임원은 "환리스크 헤지의 목적이 특정시점에서 환율 수준을 확정시키는 것인데,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경영진의 몰이해 때문에 큰 손실을 보았다" 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내 많은 기업이 수출입 거래에서 달러화를 주고받으면서 K사처럼 환율변동 위험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

일부 대기업조차 특정 시점의 달러화 결제자금을 수출대금 입금규모와 맞춰놓는 정도의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근본적으로 기업들이 환위험 관리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중 우리나라 총 외환거래에서 환위험 헤지 수단이 되는 통화선물.선물환 거래 비중이 전체의 35%로 현물환 거래의 절반에 불과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마저 은행간 거래가 대부분이고 개인(법인)과 은행, 개인과 선물거래소 사이의 거래는 미미하다" 고 말했다.

지난 10월 법인이 선물거래소를 통해 통화선물거래를 한 비율은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환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경영자들이 정부의 환율방어 정책에 주로 의존하는 등 이에 대한 인식이 낮고▶중소기업의 경우 전문가가 없어 불가능하며▶올해 문을 연 선물거래소 등 인프라도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은 이창복(李昌馥)외환시장팀장은 "환위험 헤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달러를 사서 투기 목적으로 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라며 "경영자들이 헤지 후 환율이 반대로 움직일 경우 손해본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 라고 지적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국 금융기관들은 원자재 수요가 많은 기업 등의 신용평가를 할 때는 금융.상품선물로 헤지를 얼마나 잘 하는지 따진다" 며 "이는 헤지를 안하면 언제 그 기업이 적자가 날지 모르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종합상사의 외환딜러는 "기업이 환헤지를 못하는 것은 정부가 공공연히 목표환율 등을 거론하기 때문" 이라며 "기업이 나름대로 헤지를 하다 보면 정부가 나서 시장을 중화해 버리는데 비용을 쓸 이유가 없다" 고 말했다.

한편 일부 대기업들은 외환 전문가를 확보해 체계적으로 환위험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계열사간 수출.수입에 따라 내부 선물환거래를 하거나▶외화표시 자산.부채를 항상 같게 하며▶본.지사간 상호결제때 차액만을 지급하는'▶환율추세에 따라 수출을 앞당기고 수입결제는 늦추는' 방법 등을 쓰고 있다.

또 중소기업들의 환위험 관리를 위해선 ▶거래단위가 5만달러인 선물거래소를 이용하거나▶주거래은행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적은 규모라도 선물환 거래를 트고▶중소기업은행.수출보험공사의 수출위험보험 등을 활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환컨설팅사인 델톤의 서영호부장 등)은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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