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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 '여우와 사랑을'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월 시작된 '오태석연극제 2'의 마지막 작품 '여우와 사랑을'이 오는 10일부터 내년 1월 30일까지 대학로 극장 아롱구지에서 공연된다.

그동안 오태석연극제2는 '춘풍의 처''부자유친''코소보 그리고 유랑'을 통해 정체성 확립이라는 대주제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의 전통작인 말과 행동양식에 중점을 둔 공연을 해왔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이번 '여우와 사랑을'을 통해서는 새천년을 맞아 재도약의 기점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 연극의 등장인물들은 연변처녀와 외국인 노동자, 야쿠자에 이르기까지 온통 외지인이다. 이들은 낯선 서울에서 여러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점차 서울의 황폐함에 닮아가는데 이들의 회복 과정을 통해 연극은 탈색된 현대인의 정서와 퇴색된 마음에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자 한다.

따뜻한 동포애를 기대하며 한국에 온 연변 동포들은 하지만 서울에서 타국보다 더 냉담한 현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느사이 이들은 서울의 물질 만능의 윤리적 황폐함에 물들어 간다.

이들은 '윤동주사상 실천선양회'라는 엉터리 집단을 만들어 사기행각을 시작한다. 한약재를 밀매하고, 포상금을 노려 만주의 여우를 들여오기로 하고, 장기매매를 하는 등 이들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시대의 원리에 순응하며 점점 악랄하게 변해간다.

그러던 중 북간도 용정처녀 남순이 염소목장주 공관규와 결혼하기위해 백두산을 거쳐 종단 남행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를 전해들은 이들은 남순을 서울까지 잘 데려 오라는 염원과 함께 여우를 풀어준다.

드디어 남순이 도착하고 결혼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이로서 이들은 이전의 순수한 마음과 정을 되찾고 하나된 조국을 기원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극에서 여우는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이 잃어버린 인간미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출자 오태석은 없어져 버린 여우는 바로 무서웁고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모든 꿈과 환상이라 했다. 이러한 여우를 불러들여 작품은 인간미가 사라지고 자연과 교감하는 힘을 잃은 서울에 서정성과 인간미가 복원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여우와 사랑을'은 96년 공연으로 이미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연극평론가협회상을 수상, 작품성을 인정받은데다 새로이 흥겨운 춤과 노래가 보강돼 볼거리가 풍부한 작품으로 단장됐다. 경극을 연상시키는 음향과 살아 움직이는 듯 정교하게 만들어진 여우 인형의 움직임도 색다른 재미를 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생략과 비약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오태석 특유의 연출과 착상, 시공간의 자유로운 활용, 풍부한 이미지의 유희 또한 이번 공연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오태석이 작,연출을 맡았고 박희순.황정민.김남숙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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