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박찬일의 음식잡설 ① 한국 스타 셰프의 허와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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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청담동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서양식 요리사를 구하고 있는데, 그의 이력에 의심이 들어 확인을 부탁한다는 얘기였다. 내용을 보니,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외국의 유명 식당을 돌며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고 되어 있었다. 심지어 한 미슐랭급 레스토랑의 부주방장을 지냈다고 주장했다.

 유학 간 지 4∼5년 만에 이룩했다고 보기에 그의 이력은 지나치게 화려했다. 현지에 확인할 것도 없이 그의 이력은 대부분 허위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판단할 이유가 있었다. 서양의 유명 레스토랑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월급을 못 받는 도제(인턴십)부터 ‘코미’라고 부르는 견습 요리사→라인 담당 요리사→부주방장→주방장의 자리까지 오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고급 식당 요리사의 사회적 대우가 대단히 높기 때문에 경쟁도 그만큼 치열하다. 유력 정치인과 최정상급 연예인의 친구가 될 수 있을 만큼 대중적 인기도 요란하다. 그런 요리사를 ‘셀레브리티 셰프’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자 그대로 스타 셰프다. 요리책만 팔아도 노른자위 땅에 빌딩을 지을 만큼 돈도 잘 번다.

 그런 식당 문화에서 한국인이 몇 해 만에 고급 식당의 부주방장 자리에 올랐다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명망 있는 서양 식당의 부주방장급 자리에 오른 한국인은 교포를 포함해도 극히 드물다. 사족이지만, 한국인이 요리를 못 해서 그런 건 아니다. 요리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낮았고, 서양의 고급 식당 사회에 도전한 역사가 짧았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서양의 최상급 레스토랑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미 1960년대부터 도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화가는 그림을 잘 그리면 되고, 음악가는 연주를 잘하면 된다. 그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는 게 바로 ‘정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간판에 주목한다. 어디 출신이냐는 것을 그 사람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니 요리사마저 간판에 치중하게 되고 심지어 거짓, 또는 과장된 이력을 내세우게 된다. 요리사는 음식을 잘하면 된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동네 의원 간판에도 졸업한 대학 마크가 붙어 있는 나라는 아마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요리사 에드워드 권의 경력이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가 유명했으니 그나마 관심을 모았을 뿐, 그에 못지않은 이력과 경력 부풀리기는 요리 동네에서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이면에는 언론의 검증 노력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전화 한 통이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요새는 국제전화 요금도 싼데 말이다).

 한 주방장은 서양의 유명 요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그런데 그 학교는 수석이라는 제도가 없다. 내부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평가하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그런 평가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게 그 학교를 나온 학생들의 전언이다. 학사제도의 차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학위를 주는 학교가 아니므로 ‘졸업’이라는 용어를 쓸 수 없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어쨌든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이제는 ‘수석 졸업’이라는 표현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에드워드 권의 의혹 이후다. 자, 다음엔 누가 ‘커밍아웃’ 할 것인가.

 흔히들 서양의 고급 식당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요리사에게 ‘00 출신’이라는 말을 붙인다. 그러나 적어도 출신이라는 말을 쓰려면 유급 요리사로 일정 기간 정도는 일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6개월짜리 무급 견습생으로 일한 것을 과연 출신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대개 이런 일은 언론이나 블로거에 의해 명명되어 굳어진다. 출신이라는 표현이 남발된다. 예를 들어 삼성 출신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그 회사에 ‘고용’되어 일정 기간 일해야 가능한 일이다. 외국에서 온 무급 기술연수생에게도 같은 호칭을 붙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핵심은 요리 실력으로 경쟁하는 식당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유학이나 외국의 식당 경험이 사실대로라면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그것 자체가 경쟁력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장된 이력으로 인기를 끌겠다는 생각은 크게 잘못되었다. 돈과 기회가 없어 외국에 요리 유학도 못하고, 묵묵히 국내에서 칼질을 해온 요리사들에게 돌아갈 관심과 시선을 독점하는 행태다. 어디까지나 요리사는 음식으로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배우 송강호나 현빈이 어느 대학 나왔더라?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박찬일은 …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했다. 월간지 기자로 일하던 1999년 돌연 사표를 던지고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으로 날아가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에서 음식 공부를 시작했다. ‘요리와 양조’ 과정을 이수한 다음, 로마의 소믈리에 코스와 슬로푸드 로마지부에서 와인 수업을 마쳤다. 이후 시칠리아 ‘파토리아델레토리’ 레스토랑에서 현장 요리 수업을 거쳤다. 2002년 귀국해 청담동 ‘뚜또베네’와 신사동 ‘논나’의 셰프 등을 거쳐 현재 홍대 앞 ‘라 꼼마’ 셰프로 일하고 있다. 각종 매체에 이탈리아 음식과 와인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로컬푸드에 집착이 강해 요즘도 매일 새벽 노량진시장에 나가 스파게티에 들어갈 신선한 해물과 수산물을 직접 고른다. 저서로 『와인스캔들』(넥서스),『보통날의 파스타』(나무수),『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창작과비평)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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