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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건강 10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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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행복의 조건으로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정답이 따로 있을 리 없겠지만 필자는 건강health, 돈money, 인간관계human relationship, 지력intelligence을 손꼽고 싶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용보다 순서다. 앞쪽으로 갈수록 가장 비탄력적인 행복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최대 화두도 건강이 아닌가 싶다. 이데올로기는 사라지고 개인의 행복을 우선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정치와 경제, 사회의 모든 정책이 국민의 건강과 보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방암 연구비 지원에 인색하면 다음 선거에서 낙선한다는 미국 국회의원들 사이의 불문율이 좋은 사례다.

돈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자본주의답게 사람들이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있는 분야도 건강을 위한 보건의료다. 미국은 국민총생산의 15%를 의료비로 지출한다. 이는 국방과 교육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 액수다. 20세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역사 이래 한 번도 수위를 놓쳐본 적이 없는 군사비 대신 의료비가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현대문명이 펼치는 화려한 파노라마를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무병장수를 강조하고 싶다.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많지만 그래도 역사는 발전하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의 황제인들 비아그라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겠는가. 천하를 호령했던 알렉산더 대왕도 오늘날 불과 수천 원이면 살 수 있는 항생제가 없어 말라리아로 숨져야 했다. 하지만 중요성에 비해 가장 홀대받는 것도 바로 건강이 아닌가 싶다. 너무 흔해 오히려 고마움을 모르는 물과 공기의 역설이 건강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시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것을 배려하는 것은 처세술의 기본원칙이다. 그리고 시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대상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건강이다. 건강에 투자하는 것이 곧 성공의 지름길이란 뜻이다. 이번 달엔 어떻게 건강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을 이야기하려 한다. 비결은 없지만 원칙은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건강의 원칙들을 항목별로 소개한다.

1. 건강의 정의가 달라졌다
세계보건기구(WHO)
는 최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physical, mental, social wellbeing’이란 기존 건강의 정의에 ‘영적 건강spiritual wellbeing’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정신적 건강이 단순히 정신질환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의학적 개념이라면 영적 건강은 다분히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 영적 건강의 추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육체적, 정신적 질병이 없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누린다 하더라도 영적 만족을 얻지 못한다면 진정한 건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뉴욕 월 가에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여피yuppie1) 가 영적 안녕을 얻고 있는 후진국의 불구자나 극빈자보다 반드시 건강하다고 볼 순 없다는 것이다. 난치병을 해결하고 평균수명이 늘어난다고 건강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배부른 돼지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질문에 답변할 수 있어야 진정 건강하다는 의미다. 권태를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나서도록 하자.

2. 자궁 내 환경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건강은 유전과 섭생으로 설명해 왔다. 부모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고 태어나 올바른 섭생을 유지하면 건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자궁 내 환경이 이들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 평생 건강이 어머니 자궁 속에 머물러 있는 아홉 달의 수태기간 동안 결정된다는 것이다. 유전이 인체의 설계도이며 섭생이 평생 지속되는 건축공사라면 자궁 내 환경은 기초공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실제 자궁 내 환경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연구결과는 많다. 고혈압, 암, 당뇨 등 많은 질환들이 태아시절 잘못 뿌린 씨앗이 수십 년 후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태어나서 잘 먹고 잘 입히기보다 수태기간 동안 태아의 건강을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산모는 충분한 영양섭취와 적당한 운동으로 심신의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 특히 임신 여부를 놓치고 지나가 버리기 쉬운 임신 12주까지는 뇌를 비롯한 내부장기가 형성되는 기간이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3. 기본에 충실하자
금연 하나만으로 평균수명 면에서 10년은 유리하다. 음주는 酒種에 관계없이 하루 석 잔까지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 독한 술일수록 술잔이 작으므로 한 잔에 담긴 알코올량은 10그램으로 동일하며 하루 30그램까지의 알코올섭취는 심장병 예방 등 건강에 좋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운동은 하루 30분씩 1주일에 4회 이상 시행하도록 한다. 운동강도는 노래를 부르긴 힘들지만 옆사람과 대화는 가능한 정도가 바람직하다. 식사의 원칙은 세 가지다. 골고루, 규칙적으로, 조금 적게 섭취한다는 것이다. 수면량은 가급적 하루 여덟 시간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숙면을 위해선 취침시간에 상관없이 일정한 기상시간에 일어나야한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4. 이완의 미학을 배우자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분이라면 이완의 미학을 배우길 권한다. 과도한 긴장은 당장 실력발휘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길게 보면 건강에 해롭기 때문이다. 副腎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혈압을 올리고 근육의 혈류량을 늘여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돕지만 잦은 스트레스로 만성적인 과잉분비 상태에 놓일 경우 돌연사와 면역력 저하란 반대급부를 치러야 한다. 긴장이 퍼포먼스performance라면 이완은 포텐셜potential이다. 첨예한 경쟁사회일수록 장기적인 안목에서 포텐셜이 중시된다. 어떻게 해야 이완에 도달할 수 있는지는 필자의 능력 밖이다. 문화생활도 좋고 스포츠도 좋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긴장을 풀고 편안해질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도록 하자. 그것이 곧 나의 건강이요 경쟁력이다.

5. 암이 걸림돌이다
평소 건강관리에 자신이 있는 분이라면 암을 걱정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싶다. 암은 다른 난치병에 비해 예방과 치료가 어려운 대표적 질환이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사례가 他山之石이다. 최근 수 년 간 한용철 서울대병원장, 이광호 서울대 의대학장, 김광우 대한의학회장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가들이 모두 암으로 사망한 반면 뇌졸중으로 사망한 교수는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최대 사망원인은 4명 중 1명이 사망하는 뇌졸중이다. 암은 5명 중 1명 꼴로 사망하는 사망원인 제2위 질환임을 감안할 때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사망원인은 일반 인구와 분명히 다른 경향을 보인다. 이는 국내 최고의 명의들도 암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졸중은 금연과 低鹽食저염식, 운동을 통해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쉽게 조절이 가능하지만 부위별로 발생원인이 제각각인 암은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그러나 암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는 위험요인의 제거다. 예컨대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비보유자에 비해 간암이 생길 확률이 2백 배나 높다.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10배나 높은 폐암 발생률을 감수해야 한다. 간염예방백신을 접종하고 금연하는 것이 간암과 폐암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란 소리다.

둘째는 건강검진이다. 조기발견하면 대부분 완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의 조기발견은 국가원수 건강관리의 핵심이기도 하다. 대장암 예방차원에서 양성종양인 폴립의 제거수술을 받은 레이건과 피부암 예방차원에서 안면 과각화증 제거수술을 받은 클린턴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한국 남성 1위 암인 위암과 여성 1위 암인 자궁경부암은 위내시경과 질세포진 검사란 훌륭한 조기발견 수단이 있다. 위암과 자궁경부암으로 생명을 잃는 것은 건강관리에 소홀했다는 증거에 다름아니다. 부위별 암의 위험요인과 건강검진법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시판 중인 건강서적이나 인터넷 건강사이트를 참고하길 바란다.

6. 교통사고가 복병이다
교통사고야말로 무병장수의 최대 변수다. 해마다 1만 명이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는다. 특히 당신이 20대나 30대라면 교통사고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교통사고만큼 잔인한 것도 없다. 암이 두렵다지만 암세포 역시 우리 몸의 일부이며 말기암이라도 수 개월 이상의 삶을 허용하는 온순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뼈와 살을 찢고 들어오는 금속성 파편의 살육은 직접 목격하지 않으면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필자는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과속의 금지다. 이미 최고급 세단인 벤츠 S클래스의 안전장치도 과속 앞엔 무용지물이었음을 다이애너 비의 사망사건으로 확인한 바 있다. 급제동 정면충돌시 차량 보닛이 운전석으로 밀려들어와 생명을 위협하는 차량속도는 불과 60km/hr다. 둘째, 돌발상황에 대비한 가상운전이다. 만일 반대차선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온다면, 만일 옆차선의 차량이 갑자기 끼어든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미리 행동수칙을 다짐해 보는 것이다. 빙판길 제동은 풋브레이크보다 엔진브레이크2)를 이용해야 한다지만 이것 역시 실제상황에 대비해 미리 손놀림을 익혀 둬야 한다.

7. 여성호르몬은 선택이 아닌 필수
폐경을 맞이한 여성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여성호르몬 요법을 받길 바란다. 여성호르몬 요법이란 폐경 이후 난소에서 분비가 중단된 여성호르몬을 알약의 형태로 매일 한 알씩 복용하는 것으로 이미 의학적 효용에 대한 검증이 끝난 상태다. 여성호르몬을 복용하면 골다공증, 심혈관질환, 노인성 치매, 대장암처럼 치명적인 질환의 예방효과는 물론 폐경증후군3)의 치료와 피부미용 효과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호르몬이란 단어가 주는 거부감과 유방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현대의학이 베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혜택을 마다하고 있다. 국내 5백만 명에 달하는 폐경여성 중 2%만 여성호르몬 요법을 받고 있으며 이는 선진국의 10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국내 대부분의 병원이나 의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으며 비용은 의료보험이 적용될 경우 한 달 1만 원 내외다.

8. 진정한 보약은 비타민
건강에 비결이 없다고 믿는 필자지만 비타민만큼은 예외로 인정하고 싶다. 비타민제 복용만큼 효능과 부작용이 철저하게 검증된 건강법도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알약보다 식품을 통한 섭취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식품만으로 필요한 비타민을 제대로 섭취하기란 매우 어려움을 감안할 때 하루 한 알 비타민제 복용을 꺼릴 이유가 없다. 비타민은 신진대사를 주관하는 효소의 촉매역할을 맡고 있다. 인체를 자동차에 비유할 때 일종의 연비향상제로 생각하면 알기 쉽다. 감기에 걸렸다거나 입맛이 떨어지고 피로할 때 비타민제를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

최근 노화와 성인병에 관여하는 유해산소의 작용을 차단하는 抗酸化작용까지 속속 입증되고 있다. 하루 권장량의 100배 이상을 복용하는 megadose 요법도 있지만 이를 권하고 싶진 않다. 입증된 효능에 비해 복용방법이 불편하고 과량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시판 중인 종합비타민제 하루 한 알이면 충분하지만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과로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12시간 간격으로 한 알씩 하루 두 알 복용하는 것도 좋다.

9. 물을 자주 마시자
가장 손쉬운 건강법의 하나가 물을 자주 마시는 것이다. 현대인은 대부분 가벼운 탈수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쁜 탓에 물을 마실 기회가 적고 탈수를 조장하는 카페인 음료를 과용하기 때문이다. 물은 훌륭한 감기치료제다. 가뭄 든 논바닥처럼 갈라진 기관지 점막을 촉촉하게 적셔 주고 고열과 염증을 가라앉혀 준다. 감기에 걸리면 아예 책상 위에 물컵을 갖다 놓고 수시로 물을 마시도록 한다.

숙취해소에도 물이 정답이다. 알코올로 인한 탈수현상을 막고 알콜의 혈중농도를 떨어뜨려 간의 부담을 덜어 준다. 유해물질의 희석효과도 얻을 수 있다. 발암물질을 비롯한 유해물질의 피해는 총량보다 농도에 비례한다. 따라서 같은 양에 노출되더라도 물을 많이 마시면 농도가 떨어짐으로써 피해가 최소화된다.

10. 헬리코박터를 박멸하자
만일 독자 여러분에게 예기치 않은 돈 10만 원이 생긴다면 헬리코박터 박멸을 권하고 싶다. 헬리코박터란 위장 내에 살고 있는 세균으로 재발성 궤양은 물론 위암의 강력한 위험요인이기도 하다. 헬리코박터가 있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십 년 후 4∼6배나 높은 위암 발생률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 성인 10명 중 8명은 이 세균을 갖고 있을 정도로 흔하다는 것이다. 국내 감염자가 모두 헬리코박터 치료를 받는 것은 곤란하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10만 원이 생긴다고 가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헬리코박터 감염 여부는 위장내시경, 요소호기 검사, 혈액검사의 세 가지로 알 수 있으며 이들 검사에서 양성으로 확인된 사람은 3∼4종의 항생제를 1∼2주 동안 복용하면 된다.

홍혜걸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emerge새천년(http://emerge.joongang.co.kr) 199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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