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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리의 전문성 나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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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손용호
건양의대
김안과병원 원장

얼마 전 미 의회에서 열린 국정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모범 사례를 잇따라 언급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 가입과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등으로 선진국으로 한 단계 도약하며 한층 성숙해진 한국의 시민정신과 국가 위상을 반영하는 듯해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한국은 이제 회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국제 사회가 주목하는 선진국이다. 국제 사회가 기대하는 선진국이란 자본이 부유한 나라만은 아니다. 바로 인류의 공통 과제에 함께 관심을 기울이고 기여하는 나라만이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그간 시야를 가린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발전’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내달려 왔다. 그리고 실제 많은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우리 사회가 담당해야 할 일은 진정성 있는 ‘나눔’의 실천이다.

 나눔에는 여러 행태가 있지만 가장 값진 나눔은 ‘전문성의 나눔’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 총기사건으로 중상을 입은 개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의 응급수술을 진행한 한국계 미국 의사 피터 리가 ‘기적의 손’으로 언급되며 세계의 관심이 주목된 바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20여 년간 미 해군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전장에서 수많은 외과수술을 집도했던 그의 실천적 ‘나눔’이 있었다.

 지난 2007년 이후 단순한 의료 봉사에서 시작된 김안과병원의 캄보디아 지원사업이 안과전문의 육성, 의료기기 무상지원, 병원 설립 등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전문성의 나눔이야말로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으면서도 그 결과가 비교할 수 없이 값진 나눔이라는 것을 배웠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프로보노(pro bono)라는 용어가 이제는 낯설지 않은 시대다. 특히 사회 지도층의 공익적 역할을 기대하는 의미에서 자주 사용된 이 용어들은 어느 정도 정치나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된 감도 없지 않다. 진정성이 없는 프로보노는 자신의 이익에는 부합할지 몰라도 사회 발전에는 기여할 수 없다. 반면 전문성의 나눔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 속의 나눔이라는 측면에서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로 볼 수 있다.

 현대사회는 전문가들의 시대다. 비단 의사나 변호사만이 전문가의 영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집안 청소만 해도 이사 전문, 집진드기 청소 전문, 대청소 전문 등 각각의 상황에 맞게 장비와 인력이 배치돼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독거노인 가정을 깨끗한 환경으로 개선시켜 준다면 이는 몇 십만원 지원금보다 더 갚진 후원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제빵사, 미용사, 자동차 정비사, 전기 배관기사 등 이들이 갖고 있는 전문성, 즉 ‘달란트’를 통해 나눌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손용호 건양의대 김안과병원 원장